안녕, 선생님! 격조하는 동안 안녕하셨나요. 저는 알 수 없으므로 가만히 상상해 봅니다.
지루하거나 치열한 여름 방학 보내기. 바다를 보러 가기. 전시나 출간 준비를 끝내고 다음을 준비하기. 비와 더위 사이로 행사 다니기. 모르는 개와 산책하기. 새로운 일 계획하기. 다시, 힘내어 나아갈 준비하기! 혹 이 중에 선생님의 오늘이 있나요?
그렇다고 하여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관심법은 쓸 수 없지만, 관심을 기울이며 먼발치(주로 인스타그램)에서 지켜보고 있거든요. (지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구먼유)
공개하신 일상이 일부라서 그런지 저는 늘 선생님이 궁금한 데요. 혹 궁금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안녕하답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여름에 두고 갈 것들을 궁리하고 있어요. (이 계절에 무기력을 두고 가려고요)
또 조금씩, 자라고 있기도 해요. 성장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하루하루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낙관의 태도를 키워가는 중이에요. 위태로운 시간을 보낼 때 이러한 마음 씀은 꽤 도움이 되더라고요. 지금처럼 괜찮은 시절에도 퍽 괜찮은 마음 같아요. 이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우리 나눈 편지가 두 자리 숫자가 되는 순간도 마주하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열 번째라니. 시간 참 빠르군요.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보낸 두 계절, 어떠셨어요? 사월부터 매달 두 번씩 편지를 나누는 동안 저는 넘치게 좋았습니다. 가끔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어요. 나는 행운아야 정말로! (I know I know ♪)
뉴스레터를 다시 시작할 무렵 저는 의식적으로 고민을 피했습니다. 첫 편지에서 말씀드렸지요. 힘을 빼고 쉽게, 규칙 없이 오래 하고 싶다고요.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어요.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부풀어 오르면 스스로 말해요. ‘이러면 오래 못 써어!’ 이 말이 제게는 바늘과 같습니다. 펑, 하고 욕망을 터트려 줍니다. 그러면 기꺼운 진심만 남고, 그것으로 편지를 쓰고는 합니다.
편지를 여는 마음은 이보다 편했으면 좋겠어요. 긴 하루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처럼. 치열한 노동 후의 단잠처럼.
고민 없이 쓴 편지라고 했지만,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나누어 먹을 밥을 짓는 일과 다르지 않은데요. 식탁을 채우는 마음으로 발행하고 나면 사소한 걱정이 몰려옵니다.
국이 달거나 김치가 쓰면 어쩌지? 밥이 맵거나 김이 딱딱하면 어떡해? 마음 맛에 맞으셔야 할 텐데.
아마도 소중한 이에게 무언가를 보내는 마음은, 걱정이 살기에 좋은 곳인가 봅니다. 해서 편지를 보내고 나면 저는 잠시간 모른 척합니다. (무책임해!) 잊지는 않더라도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줄곧 이런저런 연재를 해왔지만, 글을 공개하는 순간마다 이런 생각이 밀려오거든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인식하는 순간부터 볼 빨간 청년기를 보냅니다. 부끄러우니까 고독의 시간 속으로 스며 들어갑니다. 아마도 이 편지를 보내고 나면 또 그럴 거예요. 열 번째 고독이 찾아올 테지요.
그런데요. 저는 이 감정이 무뎌지지 않길 바랍니다. 섣부르게 만족하고, 충분하다고 여기면 마음이 시들 것 같거든요. 내가 준 무언가가 부족해 보이고,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져야 더 잘하고 싶지 않겠어요? 발행 후 밀려오는 고독은 더 나은 만남을 위한 동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홉 편의 지난 편지를 다시 읽어 보니 저의 별스럽지 않은 일상과 생각이 가득하더군요. 다시 볼이 빨개지지만 웃음도 납니다. 지나온 봄과 여름이, 주고받은 마음이 떠올라서 그렇겠지요. (대전에서 볼이 빨간 채로 히히 웃는 사람을 보신다면 그것이 저일 것입니다)
이르지만 열한 번째 편지를 생각합니다. 열 편의 편지로 우리가 인사를 나누었다면 앞으로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해요.
뉴스레터를 시작하기 전에 염두에 둔 기획이 꽤 있어요. 다만 말씀드렸듯 ‘시작’하기 위해 미루었습니다. 하지 않겠다는 의미보다는 우선하지 않으려던 것인데요.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다양하고 참신한 기획을 시도해 보려고요.
그러니 지나온 날들의 감상은 여기까지만 해야 하겠지요. (생후 5개월 만에 자서전 쓰는 기분도 들고 그래서 조금 쑥스러워요) 남은 지면에서는 새로운 기획 몇 가지를 말해보겠습니다.
먼저, 책·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뉴스레터에서도 다뤄보면 어떨까 (항상) 생각합니다.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작품이 많거든요. 주제 또는 분량상 지운 내용도 있고요. 기획 기사를 구상하다가 매체 성격과 맞지 않을 듯해서 접은 적도 많아요. 그렇게 접어둔 작품과 내용과 기획을 뉴스레터에 담아볼까……했는데 주저했습니다.
매주 한 편꼴로 마감하다 보니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아주 입만 열면 자동으로 나온다니까요. (난 문제아야 정말로 아이고 아이고) 모쪼록 시간 관리 잘해서 「고독에게」만의 정서로 책 칼럼과 영화 칼럼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이 뉴스레터의 목적이지요. ‘연결’에 관한 기획이에요. 이 안에 세 가지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터뷰에요. 편지답게 대면보다는 서면으로, 다른 분의 목소리를 담아보고 싶어요. 기성 매체처럼 깊고 긴 인터뷰가 아니라 간단한 문답 정도를 떠올려 봤어요. 요컨대 살아오며 경험한 ‘고독한 순간들’을 물어보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챌린지입니다. 말하자면 텍스트 챌린지인데요. 위에서 말한 예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일테면 ‘내가 생각하는 고독’에 관한 한 문장 정도를 공유하는 기획이거든요. 다른 점이 있다면 제 편지함에 놓이는 답서가 아니라 각자의 소셜미디어에 먼저 게재하는 형식이라는 점입니다. 제목만 정했어요. ‘고독이란… 몰까…’
세 번째는 콜라보레이션이에요. 콘텐츠를 만들며 가장 신났던 기억은 한 플랫폼에서 협업 콘텐츠를 만들 때였어요. 뉴스레터에서도 해보고 싶어요. 뉴스레터를 발행 중인 분들, 글 쓰는 분들, 독자분들과 함께 편지를 써볼까 해요. 서로 발행 중인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다면, 또 형식이 유사하다면 발행인만 바꿔서 한 편씩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아직은 아이디어를 모으는 단계입니다. (‘오늘의 고독지기’ 같은 형식이겠지요?)
이것 말고도 기획은 여럿 있지만, 이것들을 포함해 아직 무엇 하나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편지를 오래 쓰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치지 않아야 할 테고요. 지치지 않으려면 서두르지 말아야겠지요? 새로운 기획은 준비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그전에 부탁드려요. 혼자 할 수 있는 기획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0명), 열린 마음으로 참여해 주세요! (갑자기 다음 기사에 담긴 소설 제목이 떠오르네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인데요… 아, 여기까지만!)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아홉 번의 편지를 보내고, 그보다 귀한 답서를 받았습니다. 매번 답서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답서를 열어보던 그 귀한 순간들은 정말로 잊지 못합니다. 마음을 전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잊지 않고 착하게 살게요)
세상에는 재미와 가치를 가진 콘텐츠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 편지를 열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발행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해 주신다면, 일 덜 하고 돈 많이 버는 훌륭한(?) 운이 서로에게 닿을 거예요! (앞으로는 이런 사기 안 치고 착하게 살게요)
편지의 시작에서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요. 선생님이 궁금할 때마다 선생님이 남기신 게시물을 봅니다. (지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다가 마음이 휘청일 때가 있어요. 저는 선생님이 아프다는 말이 참 아프더라고요. 우리 아프지 맙시다. 건강하게, 가을에 가까운 날 다시 만나요.
아마도 지금쯤
열 번째 고독을
서성이고 있을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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