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예요. 잘 지냈어요?
요즘 날씨가 정말 끝내줘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만큼. 이런 하늘 아래라면 하루라도 더 묵고 싶을 만큼. 한 해에 얼마 안 되는 가을날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마음의 사정도 그러면 좋을 텐데. 아닌가. 마음은 사시사철 좋아야 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고요, 그보다는 선생님이 건강히 잘 계시는지 궁금하고 염려가 됩니다. 해서 오늘은 저의 근황을 편지에 담아 보내요.
시월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 것 같아요. 천천히 복기해 보니, 늘 그렇듯 별일 아닌 일들이 꽤 많았네요.
편지가 또 길어질 테니 하나만 말할게요. 늘 하던 고민이 가을 드니 무르익네요. 선생님도 그런 게 있으신가요? 사시사철 반복되는 고민. 저에게는 있어요.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보다는 불안인가요?
아시다시피 제 일이란 글쓰기이지요. 양장(중요)으로 책을 내는 멋진 작가님들처럼 반짝이는 못 해도, 호롱불처럼 희미하고 소소하게 글빛 내며 살고 싶은데. 이조차 쉽지 않네요. 빛나는 건 바라지 않는데 꺼질까 봐 걱정이에요. 한기가 돌아오면 다만 계속 쓰려는 제 바람보다 현실의 바람이 더 거세게 부는 바람에 두 손 그러모아 호롱불을 지키게 됩니다.
올해는 유독 자주 그래요. 투고와 새 연재를 고민하다가 문득 이럴 때가 아니지, 생각했어요. 물가는 오르는데 고료는 그대로고, 월세가 올랐는데(😥) 다른 글자리(지면)는 구하지 못하니까. 오히려 글 쓰는 시간을 줄이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 혼자 논의하는데, 다음(daum)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브런치스토리에 크리에이터라는 제도가 생겼어요. 몇몇 이름(사용자 명) 밑에 조그마한 배지를 달아주는 것인데요. 두 달 전쯤 저에게도 ‘도서’ 크리에이터라는 배지가 생겼어요! 따로 메시지가 온 건 아니므로 저 몰래 달아주었다고 해야겠군요. (이런 부끄럼쟁이들!)
며칠 전 다시 보니 저의 대표 분야가 달라졌더라고요. ‘취미’ 크리에이터로 돼 있던 것입니다. 취미에 해당하는 분야는 ‘취미, 건강, 스포츠, 자동차, 게임’이더라고요. 그게 뭐가 문제겠어요. 최근 그곳에 제가 올려둔 글은 대부분 책 칼럼이고, (총합으로 따지면 에세이가 훨씬 많긴 해요) 독서도 취미일 수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면 될 일이지요. 하나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몰랐는데요. 통점이었나 봐요.
제가 글을 쓰는 게, 거기 글을 올리는 게 전부 취미일 뿐이라는 말처럼 들리더라고요. 아닌 걸 아는데, 아니라고 말해도 안 들릴 때가 있는데 하필 요새 그런 시기라서 당황했던 것 같아요. (모든 마음의 문제는 ‘가뜩이나’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의 대신 문의했어요. 신경 쓰여서. 혹 착오가 있는 건 아닌지 여쭈었지요. 일주일 지나 답변이 왔어요. 대표 분야를 다시 검토했다면서. 지금은 다시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었습니다. 안도하다가 ‘이게 뭐라고’, ‘뭐가 달라진다고’ 실감하니 헛웃음 나오더군요. 덕분에 한 번 더 웃었으니 좋은 일이려니 합니다!
참 엉성하지요. 요즘 제 속이 이래서 저의 고독이 저를 자꾸 이렇게 다그쳐요. ‘어휴 시끄러워!’ 어디 물어볼 곳도, 털어놓을 데도 없으니 그 소리를 혼자 전부 들어야 하는 고독의 입장도 이해가 가요. 그러면서 고독에게 보내는 소란 일부를 선생님께도 보내네요. 이상한가요? 하지만 여기가 아니면 이런 얘길 어디서 하나요? 우리, 그러기로 한 사이니까 미안해하지 않을게요!
아무려나 저는 계속, 쓰고 싶어요. 글쓰기를 선택한 후로 이 일 앞에서 제 유일한 두려움은 더는 쓰지 못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쓰지 못해도 살아가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서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왜 없겠어요. 그래도 십 년 넘게 도망치고 돌아오고 그렇게 해보니 내 일이, 글쓰기가 더 소중해지는 것입니다. 쓰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괴롭지 않아요. 쓰지 못하는 게 괴롭지. 고민의 답은 정해져 있어요. 나의 일을 하려면, 다른 일을 더 해야지요!
이 결론까지 오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게 있어요. 내가 글쓰기를, 쓰는 생활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예전보다 더. 힘들더라도, 염치없더라도 지킬만한 가치가 있구나. 그걸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해도 나는 아는구나.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가요. 인간의 삶은 ‘고통 아니면 권태’라고. 우리는 이렇게 배운 것 같은데요. ‘고진감래’라고. (라임 어땠어요?)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모르니까 사는 거겠지요. 로또든, 오늘이든.
생각해 보니 시와 소설은 물론, 에세이도 거의 1년 넘게 신작을 공개한 적 없네요. 그래도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시절이 오겠지요?
서로 종교는 다르겠지만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우리 기도해 주기로 해요. 서로가 계속 서로일 수 있게. 무언가 잃는 일 아니니까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주자고요. 저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을 잃지 말기를 두 손 모아.
얼마 전 제 왼손의 손톱이 오른손 손톱 주변의 살을 찔렀어요. 상처가 나더니 피가 흐르더군요. 나는 강한 건가 약한 건가 (부위 별로 다른 거야) 나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어휴) 따져보는데 잠시 후 따아아끔 해지는 겁니다. 고작 이걸로도 아프다니. 그래도 며칠 지나니 괜찮아졌어요.
훗날 우리 모두, 각자로 아프겠지요.
그래도 오늘은 아니길,
가능하다면 먼 훗날의 일이기를.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또 편지로 만나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창작자로 살아가는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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