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또 저예요. 잘 지내셨는지요.
어쩌다 보니 한 달 만에 편지를 보내게 되었네요. 이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 느슨하고 유연하게 하겠다고 말씀드렸었지요. 월 2회를 주기로 두었지만, 그것이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하지 않을 때도 무언가를 전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테고, 그래서 편지가 오지 않은 날들엔 마음이 조금 바쁜가보다 여겨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던 것입니다.
이번 달은 제법 바빴습니다. 마음보다는 몸이 그랬습니다. 작가 또는 창작자로 살아온 시간보다 생활인으로 지내 온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몸 쓰는 노동으로 글 쓰는 미래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적은 자주 있지만 이번만큼 본격적인 시도는 오랜만이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간혹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일이 힘들거나 그 일이 나의 일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일터에 온 사람들이 다들 너무 어려서, 혹 내가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은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런 순간마다 나 역시 절실하다는 것. 그것으로 일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 그 사실들을 애써 떠올리곤 했습니다.
일하거나 일을 고민하며 지내오는 동안 부고를 듣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장지에 다녀왔고요. 조문은 끝의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시작이기도 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누군가를 보내고 나면 늘 참을 수 없이 억울합니다. 왜 바라는 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데,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은 순식간에 벌어지는 건지. 그러다가 문득 남은 얼굴을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계속 살아가야 할 얼굴들을 보니,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슬픈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보겠다고 애쓰다가 소중한 사람을 허무하게 떠나보내는 장면을 보니 모든 게 무색한 기분도 듭니다. 다만 다가오는 내일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요. 아무것도 모른 채, 무엇도 막지 못하며, 무력하게. 아니 더 잘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소식이 닿기에는 이곳보다는 그곳이 더 쉬울 거라고 믿어보면서, 다시 만날 날 부끄럽지 않도록 계속 애써보겠습니다.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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