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드려요, 선생님. 「고독에게」 발행인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벌써 올 한 해가 끝나가고 있네요. 며칠만 지내면 새해가 온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아요. 시간 참 빠르다, 그렇지요?
저의 12월엔 연례행사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모임을 했고,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냈어요. 어머니 생신과 부모님 결혼기념일 그리고 크리스마스까지 이달 안에 있어서 케이크 앞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신 날이 꽤 되네요. 귀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조금 없던 것도 같습니다.
선생님의 12월은 어땠나요?
아니, 이즘엔 이렇게 물어야 하겠지요.
올해 어떠셨나요?
저에게 2023년은 썩 마음에 드는 해는 아니었습니다. 상실이 있었고, 이어졌기 때문이겠습니다. 어제도 멀리서 가슴 아픈 소식이 들리더군요.
그래도 해가 넘어가기는 하나 봐요. 시간 참 성실하다 싶어요. 조금은 무심한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에게는 늘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는데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니까. 물론 시간의 성실과 무심 덕분에 우리가 계속 견뎌올 수 있었을 테지만요.
한 해의 끝에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많지만 다 쓰지는 못해요. 기실 매번 그랬어요. 지난봄부터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는데요. 고백하자면 보낸 내용보다 지운 문장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둡고 복잡해서 다만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긴 밤에 길을 잃게 될까 봐 그런 문장을 보낼까 봐 조심해 온 것이지요.
앞으로도 조심하려고요. 조심조심 편지를 쓸 거예요. 저의 우울과 심란은 편지를 열기 전에 유실되도록. 글 쓰는 사람은 (아니, 어쩌면 타인을 대하는 모든 순간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은 글을 볼 때 그것이 문학이든 기사든, 저 역시 쓰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화가 날 때가 많더라고요.
누구에게도 혼나지 않게, 아무도 다치지 않게 쓰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건 의도해도 이룰 수 없고, 그런 태도로 쓰인 편지로는 마음을 전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다만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늘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염려하고 싶습니다. 그 순간만의 최선이더라도요.
재미있는 사실은 다 적지 못해도 알아주시는구나 느끼게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내 주신 답서를 읽으며 항상 느낍니다. 그 순간이 제게는 더없이 소중해서 편지쓰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쓸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써 보겠습니다.
매년 이맘때쯤 저는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는 대신 보이지도 않을 새해를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면서 내년엔 더 나아지길 바라지요. 그것이 무엇이든.
그러다가 매번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때부턴 내년에도 이만큼만이라도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곤 해요. 저는 가진 게 없어도 더 얻는 것과 잃지 않는 것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는 사람인가 봐요. 선생님은 어느 쪽을 선택하실는지 모르겠군요. 어느 쪽이건 평온하고 안온하셨으면 합니다.
이제 이 편지도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잠시 한해를 돌아봅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은 올해에도 좋은 일이 많았군요. 다른 무엇보다 도무지 알 수 없고 이상한 이 세계를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듯 서로의 이름을 떠올리며 편지를 주고받은 것. 그게 가장 좋았습니다.
새해 인사는 이른 것 같으니 헌해 인사로 편지를 마칩니다.
저를 발견해 주시고 읽어주셔서, 답서를 보내 주시고 웃어주셔서 그리고 끝내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도 고생 많았어요. 보고 싶습니다.
어디선가 이 편지를 읽을
당신을 떠올리는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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