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왔었는데요. 거의 다 가버렸습니다. 느린 저는 이제야 인사를 전하네요. (배꼽 위로 두 손을 포갰어요) 새해에요, 선생님! 올 한 해 조금 덜 아프고 더 웃는 날들 이어지시길 바라요. 사랑 안에서, 사랑하면서.
써 놓고 보니 너무 어려운 부탁을 드린 건 아닌지 염려가 되는군요. 사랑이 어딨어, 둘러봐, 다들 싸우고 있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저는, 사랑 좋은 건 알어가지고, 사랑하라고 등 떠밀고 싶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우리 사는 이 세상이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구태여 싸우지 않아도 되는데 편을 나눠 다투는 사람들. 이미 괴로워 보이는 사람을 지독한 고독에 빠질 때까지 괴롭히는 손가락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사랑이 메마른 시대를 사는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말하면 과거에도 그랬다고, 인간은, 인간이 모인 곳은 늘 그래왔다고 오랜 시간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변함없이 누군가는 괴롭고, 그 괴로움을 누구도 멈추지 못했다는 말일 테니까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은 자주 말합니다. 괴롭힘이 아니라고, 정당한 권리라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말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계속 말합니다. 당신은 틀렸다고, 악의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미움을 멈추라고. 그렇게 말하며 화를 내다 등을 돌립니다.
물론 미움도 사랑도 없이 둘 사이에 서서 끝나지 않는 다툼을 지켜만 보는 사람들이 가장 많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은 말하겠지요. 여긴 늘 그래왔다고, 변하지 않을 거라고. 이 길 역시 교차점 없기란 마찬가지겠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방에서 같은 시간을 평행으로 지나오는 바람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게 더 쉬운 세상을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미움의 눈으로 보는 세상보다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테고요. 그런데도 미움을, 괴롭힘을 택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들이(혹은 미움을 선택하는 어느 때의 내가) 더 나쁜 사람이라서 그럴까요?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지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사랑하면 끝내 지게 될 테니까. 그게 두려운 거라고요.
누군가(또는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대상을 갖고 싶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하는 만큼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다 서로가 망가지고 나서야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지요.
사랑을 반복하다 보면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조심스러워집니다. 점점 더 사랑할수록, 자꾸 더 깊어질수록 함부로 손대지 않고, 바꾸려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게 됩니다. 교정 아닌 보존으로. 각자의 존재로. 그렇게 인정한 채 아끼려고 노력합니다. 사랑을 지킬 방법은 그것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제대로 질 때까지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일 테니까.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기지 못할 미움을 몰아내는 데 사랑만 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겠습니다. 평행을 달리던 두 존재가 서로 사랑하는 순간 미움은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물론 기적이 필요한 일 같습니다. KBS 주말 드라마의 최종화가 아닌 한 앙숙이던 사이가 갑자기 화해하는 일은 드물 테니까요.
한철의 꽃잎도 아니면서 지기 싫어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고 나면 내 안의 무언가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거든요. 해서 어릴 땐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을 들으면 비소를 부렸습니다. 당최 무슨 말인가 싶던 그 말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갑니다. 사랑 앞에서 제대로 지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워 보여요.
이런 사랑은 로맨틱한 사랑만으로 한정할 수 없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그 책을 쓴 사람을 얼마간 사랑하듯이 편지를 쓰면서도 읽을 사람을 함부로 사랑해 보곤 합니다. 애쓰지 않아도 편지를 쓰는 동안 그런 마음이 저를 지나쳐 갑니다. 제가 해본 게, 해온 게 사랑이 맞는다면 앞으로는 더 사랑히 눈 맞추고 성실히 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주 흔들리더라도 미움에는 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질 것 같을 때마다 저는 이 말을 되뇌려고 해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랑 앞에서 나는 지더라도 미움 앞에서 우리는 이긴다.
사랑에 무력하게
지고 싶은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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