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둑투둑 비가 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이런 데요. 선생님이 계신 그곳은 어떤가요? 거기도 비가 오나요? 저는 이런 날마다 막걸리가 떠올라요. 막걸리에 파전! 아니면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난 김에 오늘은 술 얘기를 좀 해보려고요.
봄날이니 ‘봄술’부터 말해볼게요. 푸릇한 ‘봄’과 알싸한 ‘술’. 두 단어를 합쳐 부르니 나른해지는 것도 같은데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던 날, 봄의 정경을 안주 삼아 진종일 술 마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봄비 내리는 날, 술집에서 아이유 노래가 나오는 바람에 친구와 오래간 말 없이 술만 마신 적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술꾼으로 오해하실 수 있겠으나 사실은 다릅니다. 절주의 시절을 보내온 지 수년이 흘렀거든요. 이제는 한 달에 한두 번도 채 마시지 않습니다.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달이 더 많고요. 어쩌다 술자리를 피하지 못하더라도 조금만 마십니다. 그게 쉽지 않아서(문제는 지루함!) 주종을 바꾸기도 했고요.
소주, 맥주, 위스키(를 포함한 하이볼), 와인 그리고 막걸리까지. 제가 만나 온 사람들의 주종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군요. 저는 단연 소주였습니다. 소주로 술을 배웠고, 제가 기억하는 술의 시간들은 매번 소주와 함께였으니까요.
소주 한 잔 앞에 두고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어떤 안주를 먹더라도 맛났습니다. 그 순간의 소주는 사람의 마음을 열고 들어가는 문의 열쇠 같아서 애착이 갔습니다. 왜 돈 버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마시려고 벌지. 그런 생각도 더러 했고요. 저무는 노을을 바라볼 때처럼 시선이 흐려지고 의식이 흐릿해지는 순간도… 아니 그 순간은 좋지 않았습니다. (단호) 그래서 절주를 시작한 것입니다.
취한 순간은 잘 기억나지 않지요. 잠에서 깨고 나야 몰려오니까. 쿠팡도 아닌데 새벽부터 찾아오기도 해요. 이른 새벽, 술 마시고 잠든 지 한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두통과 함께 눈을 뜬 순간! 파편으로 다가온 기억에 괴로운 적 많습니다. 애써 잠을 청해도 고통은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잠든 저의 몸을 다음 고역으로 데려갈 뿐.
이번 고역은 숙취, 숙취입니다. (내리실 문은 당분간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술 마신 다음이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을 만큼 몸이 힘들어서 이틀은 앓게 되더군요. 이십 대 때는 그런 날을 겪고도 밤이 오면 다시 술집으로 걸음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악의 무리를 처단하려는 슈퍼히어로처럼 다시 술에 덤벼든 건데요. (아이고 이 화상아) 세월이 이만큼 지나서야 비로소 겸손해진 것입니다. (이거슨 성장 서사!)
술을 줄이고 소주 대신 맥주를 마시고부터 놀라운 변화를 겪었습니다. 아주 아주 많이 먹은 날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취기가 없고 숙취도 심하지 않은 것입니다! (뭐야 나 맥주 체질이었어?) 괄호에 담긴 호들갑은 사실이 아닙니다. (!) 도수가 낮아서 그런 거겠지요. 그래도 맥주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을 끊지 않아도 되게 해주니까요.
맥주의 세계에 입 담그고 겪은 변화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읽던 글에 맥주가 나오면 술침이 도는 지경에 이릅니다. 특히 김신지 선생님의 책을 읽다 보면 ‘맥주는 참 좋은 거야!’ 싶어지면서 주종을 변경한 저의 선택에 탄복하고 맙니다. (크 나에게 취한다 😎)
맥주에 관해 더 말해보고 싶은데 아는 게 없네요. 종류도 모르고, 취향이랄 것도 없어요. 주로 거기(술자리) 있는 맥주 마십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입문자인 셈이지요. 잘 모르고 마시더라도 저는 맥주를 마시는 지금에 만족해요. 예전처럼 소주를 마시고서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일의 내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맥주와의 만남을 소개했지만, 지나간 옛사람처럼 소주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아련) 지나간 건 지나간 채로 두며 살아가는데도 미련이 조금 남았었나 봐요. 해서 혼자 약속해 둔 게 있어요.
요즘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있는데요. 이 일이 조금 자리를 잡으면. 그때 가볍게 소주 한잔하려고요. 숙취는 뭐, 다음 날 저에게 양보하면 되겠지요. (안 된다) 그러고 싶어서 애쓰는 봄입니다. 이번 봄엔 홀씨 말고 꽃을 피워보면 좋겠습니다. 그 꽃을 우리가 함께 볼 수 있다면 기다려 온 봄날을 기꺼이 살아볼 수 있겠습니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이 새벽,
이학민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