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셨나요, 선생님. 격조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라고 적은 첫 편지를 보낸 지 벌써 일 년이 되었군요. (자 선생님 박수 🤗)
해서 오늘은 짧은 소회를 남겨볼까 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길 정말 잘했다.’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독에게」를 시작한 바람에 무얼 줘도 바꾸기 싫은 목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목록은 ‘구독자 명단’입니다. 거기엔 전혀 예상치 못해서 놀라운 이름도 있고, 저도 모르게 기대한 이름도 있습니다. 그 이름들을 들쳐 볼 때마다 외롭고 벅차요.
모르실 거예요. 함께해 주셔서 얼마나 버팀이 되는지, 고마운지. 다른 일 하다가 때로 그저 살다가 답서를 열어 보거나 편지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어요. 쓰는 사람의 집.
그런 집은 다가온 이름들로 지어진다는 걸 이렇게 또 배웁니다.
한 해간 열아홉 통의 편지를 보낸 저의 생활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읽고 쓰기’를 멈춘 것 말고는. 여전히 혼자 살며 편지를 쓰고 있어요.
편지를 쓰고 보내는 건 여전히 어렵지 않습니다. 계속해 온 비결이기도 하지요. 다만 잘 도착했는지, 읽다가 상처받거나 노여움이 들지는 않았는지 그걸 확인하는 건 어렵습니다.
다행히 선생님께서 답서를 보내주시거나 소셜미디어에 공유해 주셔서 저는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릴게요. 소통해요. 고독하게, 그러나 너무 혼자이지는 않게.
「고독에게」는 제가 해온 일 중 가장 알리지 않은 활동입니다. 무작정 더 많은 이름이 다가오길 바라지 않은 탓도 있고요. 무엇보다 성과, 보상, 수치 같은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 이대로 이 속도와 차림으로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최선’, ‘열심’ 같은 태도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앞으로도 우리가 고독이라 부르는 것들―애써야 하는 것들 앞에서 들려온 내면의 육성―을 잘 모아두었다가 편지에 담아 보낼게요.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면. 음. 답서를 쓰거나 공유하지 않고는 못 견딜 편지를 써보겠습니다. (ㅋㅋㅋ)
주소록에 새로운 이름이 더해질 때마다 궁금해집니다. 어디에서 온 이름일까? 어떤 고독에서 왔을까? 정확한 사정들을 알지 못하지만, 한 사람의 크기보다 커다란 무언가가 다가왔음은 모르지 않습니다.
오늘 편지 제목을 다시 볼까요. 아시다시피 정현종 선생님의 시 「방문객」의 시작이지요. 편지를 끝낼 때마다 드릴 게 없어 늘 미안하던 마음, 그런 제 마음이 조금 편해지자고 이 시로 끝인사를 대신해 봅니다. 다시 만나요. 저는 또 오겠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전문.
언제나
환대하고 싶은 이름,
선생님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