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만세》(2023)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두 번 봤습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한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는 괴롭습니다. 하루하루 지옥 같습니다. 이 지옥은 ‘막다른 길’로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그곳은 ‘진실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곳’일 테니까요.
걷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길 위에 서기도 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짊어진 고통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저 역시 몇 해 전부터 제가 선 곳이 막다른 길처럼 느껴지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했습니다. 두 인물은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는지.
결론을 말하자면 그러지 못합니다. 여러 일을 겪은 두 인물의 선택 아닌 선택은, 그 종착지는 여전히 지옥입니다.
지옥에서 살아남기로 한 그들에게 변화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함께할 대상이 생겼으니까요. 그 대상은 막연한 희망이나 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그저 곁에 있는 사람, 나와 같으며 다르기도 한 서로를 말합니다.
나미와 선우에게 서로가 생긴 것처럼 저에게도 동행 또는 의지할 대상은 있습니다. 바로 고독입니다. 막다른 길에 서 있거나 세상 모든 게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늘 고독이 있었습니다.
지난 몇 달은 고독하지 못했습니다. 작업을 이어오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한데요. 사람 속에 뒤섞여 살아가는 일이 제게는 퍽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다시 고독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해서, 가장 먼저 선생님께 편지부터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막하더군요. 십수 년을 써 놓고도 백지 앞에서는 늘 이럽니다.
돌이켜 보면 이 막막함 앞에서 저는 늘 지고 말았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필요하지 않을 말을 너무 많이 써버렸으니까요.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이것은 마지막까지 반복될 숙명일 테니까요.
고통이 반복되는 순간에 갇히는 게 지옥이라면 이 또한 지옥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에게 ‘쓰는 지옥’은 가장 안온한 지옥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안온합니다. 다시 ‘쓰는 사람’으로 돌아왔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인사가 늦었군요. 잘 지내셨나요, 선생님?
이렇게까지 더워도 되는 건가 싶은 이 여름에 무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두 달 넘는 우리의 여백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겠지요. 어떤 변화를 겪으셨을지 궁금하군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안부를 묻듯, 반가이 묻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지나온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가을처럼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그 자리에서
편지 쓰는 이 새벽,
이학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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