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밝아서야 길을 나선다
불을 켜기 위해
지난봄에 적었다 편지를 쓸 때만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든다
따뜻한 나의 집
그리운 나의 집
우리는 각자 고독이 사는 집
그 집을 난 애착해 자가가 없어도 애는 착해 소리엔 귀를 감고 그저 살아보려는 마음 그 마음이 긴 밤에 길을 잃게 될까 봐 이러다 상실이 직업이 될까 봐 쓰게 돼 쓰다 보면 도착해
그곳이 어디든
따뜻한 나의 집
그리운 나의 집
열 번에 열 번을 넘어 스물세 번째 고독
다시 만난 날 부끄럽지 않도록
계속해보겠습니다 지나온 여백에 다짐하고
하지 않던 시간들을 뒤로 걷는다
한참 걷다 여름에 닫은 문을 뒤늦게
서성인다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오늘은 쉽니다’
그런 쪽지 혹 모르지 언젠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현듯이 문을 열지
발걸음이 무겁다 여름 언덕을 오르는 일처럼 푸후 입김을 불어 본다 살다 보니 겨울이야
입동의 입은 설 입立
일어서는 겨울 11월에는
잠시 봄동을 생각했다
만남과 동시에 작별을 준비하듯
그래도 첫머리엔 복모구구
여름의 봄동이 다시 묻는다
“어떤 기억을 가져가실 건가요?”
울고 웃게 해준 사람들
당신과의 기억들
이번엔 머뭇대지 않는다
한동寒冬안 앓으면 이 겨울도 지나가겠지 우유부단한 사람의 신념과 혁명처럼 무력하게 봄이 오면, 봄술에 건배 “지옥만세!” 함께, 외칠 수 있을까 그땐 그립겠지 우리가 다시 만난 세계
밤이 오고 이제 귀로,
귀로 걸어오는 벅찬 멜로디
반딧불이 숲이 된 12월의 거리
나무의 뼈를 깎아 그 위에 예쁘게
걸쳐 놓은 전깃줄 전구 불빛들
시선들
눈
사람들의 눈빛의 호위에
금방 따뜻해진다 근사해진다 우리 형편에도
택은 없지만 이건 지방 시
상경 없이 만난 우리
하나 건넬 게 없는 빈 주머니
시 담은 상자라도 놓아둔다 빈구석에
빈 그릇에 툭 집어넣은 동전처럼
울리는 소리 작은 시가 하는 얘기
“이런 얘길 어디서 하나요?”
따뜻한 나의 집.
그리운 나의 집.
어쩌면 이제 우리는 모르는 사이
우리는 안 돼 아니 우리는 돼
약속했지 우리는 한때
늦어도 갈게 귀가하듯 잊히기 전에
사람이 온다는 건 기적
작은 기척에도 잠을 깨던
더 자 잠이 보약이야 작약이 약인 것처럼
약은 품이었지
소슬하던 품에 약을 가득 품었지
고작 품이라서 좋았지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자기 단점
장점, 보다 아끼는 단점
이제는 알 것 같다
길고 짧은 건 대(돼)봐야 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고 웅얼거린다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한 번 더)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하게
형형색색 빛나는 밤거리
누군가 태어났나 봐
어쩌면 오늘 수많은 어제의 오늘
지금 우리 표정은 어떨까
세상을 어떤 표정으로 대해야 하는지
갓 태어난 아기가 제일 잘 알지
하지만 우리는 더는 어리지 않지
단 한 살 더 먹어도 두 살은 될 수 없어서
더 낡아져도 곁에 누가 없어도
있지 내 안에 아무도 듣지 않아도
있지, 하고 고개 숙여 물을
따뜻한 나의
집은
한 해간 고생 많았어
내 소리를 사느라
문을 열고 불을 켠다
당신이 있는 곳
내가 있을 곳
이 새벽에
각자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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