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잘 들어주셨나 봐요. 섬세한 분들 😭
그렇게 5주를 보냈습니다. 첫 편지에도 말씀드렸는데요. 아르바이트와 실습이 끝날 때 저는 손 편지를 전한 적 있어요. 이상하게 오래된 인연보다는 짧은 인연과의 소멸 앞에서 손을 쓰게 되더군요. 이번에도 (손 편지는 아니지만) 썼습니다. 아무에게도 전하진 않았지만. 지난밤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두었어요.
그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네, 지금 읽었습니다. 육성으로 읽었는데 못 들으셨나요? 그러게 왜 옆에 안 계시는가요. (히히)
닿지 않을 편지이지만 뭐 어떤가요. 저는 글쓰기를 업으로 두기 전부터 이렇게 써왔는걸요. 고독에게.
다만 이 순간 선생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혼자 쓰고 지우지 않아도 되어서. 썼다고 말했으니까, 그건 존재한다는 소리니까.
얼마 전 귀한 선생님께서 답서를 해주셨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제가 또는 이 편지가 주변 사람보다 든든한 면이 있다는 말씀이었지요. 근데 그거 알아요? 저에게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한 번만 더 말할게요.
“제가 이런 얘길 어디서 하나요?”
이제 온 세상(0명)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할 차례인가요. 제가 이 사업에 참여한 이유. 그것을 말하지 않고 시작(?)해 버렸지요. 특별한 건 없어요. 작년에 편지가 좀 뜸했지요? 그 시기에 제가 무기력증에 시달렸거든요.
한 11월쯤,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나섰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거예요. 관성으로 하던 것만 해서는 또 무기력이나 번아웃이 올 것 같았고요. 고민하다 지원 사업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연말부터 준비해서 연초에 하나 지원했고요. 이후로도 이런저런 사업을 찾다가 청년 도전 지원 사업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엔 문학이나 창작, 예술과 관련 없는 사업이라서 심드렁하게 공고를 읽었는데요. ‘취업 지원’이라는 단어가 나오더라고요. 별안간 제가 취업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이유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보다 제대로 집중하지 못함을 고민하던 터여서 그랬을 거예요.
지원한 사업의 발표까진 시일이 남았고,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글쓰기를 멈추는 것까지 각오한 채 새 직업을 염두에 둔 거지요. 마음먹어도 새 직업을 찾는 건 얼마나 막막한가요. 뭐가 있는지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하던 차에 ‘취업 지원’을 마주하니 혹할 수밖에요. 더구나 지원 자격이 되길래(이점 중요) 뭔지도 잘 모르면서 망설이기 전에 지원했고 이후 이야기는 편지에서 말씀드렸지요.
한편으로는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가 봄부터 발표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그 사이 시간도 뜨고, 선정된다면 여러 만남이 이어지는데 갑자기 세상을 마주할 자신이 나지 않아서 미리 용기 내 봤습니다.
잘했지요?
그래서, 결과가 어땠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제가 해온 일과 연계할 직업군에 대한 정보나 체험 면에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가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하나 내 일에 관한 애정과 책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또 내가 어떤 면에서 준비돼 있고, 또 부족한지 점검할 기회였고요.
무엇보다 정서 회복과 이런저런 훈련을 통해 스스로 돌보기,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같은 감각을 떠올리거나 익힐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뭐라도 해볼까? 앉아서 상상만 하던 걸 조금 더 구체적인 장면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물론 함께한 분들을 보면서도 많이 배웠고요. 우연히 참여했지만, 여러 가지를 남긴 시간이었습니다.
네, 뭐 이렇습니다. 이렇게 미괄식으로 구성한(?) ‘청년 도전 트릴로지’를 완성해 봅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갈 곳이 없군요. 이렇게 생각하니 또 실감 나네요. 계획이 많아서 어디 갈 엄두도 못 내지만(상반기에만 네 개의 지원 사업을...ㅋㅋㅋ) 기분이 이상해요. 의욕과 무기력이 한바탕에 놓인 것처럼.
하던 대로 바쁘게 일해야 할 것 같은데 한편으론 며칠만 가만히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아니, 화자야 할 일이 너무 많다니까!)
그 정도는 괜찮을까요? (안 됨, 진짜 안 됨)
지난 편지에서 상담 선생님을 만난 얘기 전해드렸지요. 제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이 문득 질문하시더군요.
자신을 사랑해요?
잠시 우물거리다 대답했습니다.
데리고 다닐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말 싫으면 먹이고 입히고 어디 데리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아요. 평생 제가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그래도 어디 버려두지 않는 걸 보면 그 정도는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건 사랑보다는 책임감 같은데요?
선생님 반응에 저는 대답 없이 웃었습니다.
이런 말은 숨긴 채.
책임질 만큼은 사랑하는가 봐요.
이제 와 생각해 봐도 그게 어느 정도의 사랑인지 모르겠는데요. 앞으로도 잘 먹이고 입히고 데리고 다녀야겠습니다.
어느 토요일 아침에는 혼자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왔어요. 극장은 딱 1년 만에 간 거더라고요. OTT의 폐해인가요? (그래도 정주행 만세!)
이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점점 더 자주 나를 데려다주겠지요.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서툴고 아득하지만 천천히 가보려고요. 어쩌면 지금 이 시도가 선생님께 한 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느리지만 가고 있나 봐요.
또 작별의 순간입니다. 이 편지의 마침표를 찍으려니 정말로 하나의 여정이 끝난 기분이 드는군요. 언제부턴가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야 무언가 끝낸 기분이 들어요. (ㅎㅎ)
다 썼는데, 발행은 미룰까요? 이런다고 작별을 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엄살 부리고 싶은 밤이네요. 오래 못 갈 서운함이라는 걸 모르지 않아요. 생각보다 더 금방 잊힐 여정인걸요. 사실 뭐 그렇잖아요. 이 정도 작별쯤 거의 하루면 흐려질 감정이니까, 너무 감정적으로 굴 필요 없어요.
그러나 또는 그래서 이 마음을 편지에 담아서 전하고 싶었어요. 쓰지 않으면 흩어질 이 순간의 미숙과 순수를 선생님과 나누고 싶어서.
선생님도 이 편지 속 저처럼 용기 내 보셨으면 해서요. 언젠가 찾아올 작은 만남과 어색한 작별 앞에서 하루쯤 마음껏 서운해 보시기를. 지나고 나면 사라질 마음은 이렇게 쓰는 것 아닐까요?
밖이 어둑해요. 선생님은 밤에 계시지요. 저는 벌써 새벽입니다. 이른 밤 미리 찾아온 새벽을 막지 않았어요. 시차 따위 무람없이 우리 또 만나요. 더 자주 봐요. 다짐도 하나 해요. 아무 때나 서로 안부 물어 주기.
이른 밤 찾아온 이 새벽,
혼자서, 멀리서, 조심히,
기억을 열어 보는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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