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고독합니다. 혼자 하는 일이니까요. 다만 외따로 읽은 기억을 퍼즐처럼 맞춰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해보려고요. 「고독에게」의 첫 프로그램 함께 읽고 싶어서를 소개합니다.
함께 읽고 싶어서는 북코멘터리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코멘터리라고 하면 제작진의 구어(체)가 담긴 영상 또는 책자를 말할 텐데요. 우리 「고독에게」는 섭외력과 자본과 신뢰도와 인지도(어우 너무 많다)가 아주 조금 부족해서 제작진을 모셔 오지는 못했고요. 대신 독자이자 뉴스레터 발행인으로서 제가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선생님 격려의 박수!)
구성은 두 가지. 해설과 단상입니다. 해설은 눈앞에 책이 있다는 가정하에 책 내용을 설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뒤에 제가 읽으며 생각한 것들, 그러니까 단상을 붙이려고 해요. 문장과 내용을 전부 옮겨올 순 없겠지요. 해서 일부 내용만 제대로(?) 들여다보고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핵심에서 이탈하거나 심지어 책의 흐름을 벗어난 (그러나 읽은 사람은 아는) 생각을 적어보려고요.
선생님은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저는 보통 이렇습니다. 첫째,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오직 본문에 관한 생각만 합니다. 둘째, 단락마다 피어나는 시시껄렁하고 엉뚱한 생각들을 좇으며 느리게 읽습니다. (분리수거에 관한 내용을 읽다가 갑자기 책을 덮고, 분리수거 하러 가거나 건전지를 사러 간 적도 있어요) 이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여기서는 ‘둘째’의 상태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담아 보내려고 합니다.
정제된 언어로 일부만 담아야 하는 책칼럼을 쓰다 보니 책을 읽으며 느낀 가볍고 재미난 생각들을 저의 고독에게만 전해서 아쉬울(?) 때가 있거든요. 게다가 저는 집에서 둘째기도 하고요. (설득력!)
함께 읽고 싶어서에는 아마도(혹은 아무도) 궁금하시지 않을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가볍기도 하겠고요. 하지만 책이 가벼워서가 아니고, 제가 가벼운 탓이라는 것 기억해 주시고요.
자 그럼 이제 함께 읽고 싶어서 가져온 첫 책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지해 드린 대로 오늘 함께 읽어볼 책은 김달님 작가님의 신작 산문집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미디어창비, 2023)입니다. (자 선생님 환영의 박수!)
작가님의 네 번째 산문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선생님과 함께 읽고 싶어서 혼자 읽으며 떠오른 것들을 먼저 적어 보내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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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저자는 ‘작가님’으로 부릅니다.
- 수록된 개별 산문은 ‘꼭지’라고 부릅니다.
- 📗 : ‘다음 내용은 책에 남겨둡니다’
- 책과 함께 보시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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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고독에게 작가님 책 표지에는 항상 나무와 사람이 있지요. 이번에도 나무는 있는데 사람은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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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넘기면 다음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
함께 웃고 울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고독에게 네, 그럴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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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책)을 인용하여, 작가님이 쓰고 싶은 글에 관해 설명합니다. (7~10쪽)
고독에게 책의 결을 설명하는 대목인데, 엔딩크레디트를 미리 보는 것 같아요. 페이지를 넘기면 이분들의 이야기가 나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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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막내 고모와 눈을 본 이야기가 나옵니다. (10~13쪽. 📗. fin)
고독에게 누군가를 떠나보낸 기억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추운 날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조금 먼 곳을 바라보며 잠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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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고독에게 차례를 보면서 가슴이 뛸 때가 있어요. 내용은 아직 모르지만, 나열된 소제목이 좋을 때. 약간 음반 트랙 리스트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뭔가 정서적으로 근사한 제목들 있잖아요. 여기서 두 개만 뽑아 본다면 ‘갖고 싶은 기분’ ‘나는 너를 사랑하려고’. 매번 하는 생각이지만, 작가님 다니는 제목 학원 저도 다니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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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 이승기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19~26쪽. 📗. fin)
고독에게 산뜻한 시작! 선생님께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씀하실 때 지으셨을 표정이 상상이 되는 거예요. 좋아하는 걸 말할 때 특히 상대가 눈을 반짝이며 들을 때 언제나 기분이 좋지요. 그 장면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읽었습니다.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도 정말 보기 좋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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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정성스러운 일일
작가님이 같은 일터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치에코 선생님과 만납니다 (27~29쪽)
고독에게 두 명의 일상 관찰자가 만나는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지요. 여기서 저는 ‘소극적인 적극성’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꼭 이 꼭지만의 이야기는 아닌데, 작가님이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저는 그렇게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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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치에코 선생님의 일 이야기가 나오네요. (29~36쪽)
고독에게 머리 긴 직원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치에코 선생님과의 대화를 읽는데, 노동에 고통만 연결돼 있지 않다는 점. 그보다 의미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 그런 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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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를 말합니다. (36~38쪽. 📗. fin.)
고독에게 기사 쓰고 나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후기를 조금 찾아봤는데요. 이 꼭지가 기억에 남는다고 적은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약간 소소한데 큰 울림을 주는 그런 일본 영화 있잖아요. 이 글의 정서도 그런 듯해요. 또 얼마 전 유유 출판사의 뉴스레터 ‘보름유유’를 읽다가 ‘필굿 소설’이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어요.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이라고 하는데요. 이 꼭지가 제게 그랬어요. 그런 면에서 출판 기획자분들은 치에코 선생님의 미화일기를 주목하셔야 하지 않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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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주고 싶은 것
'다큐멘터리 3일' 중 이화영아원 에피소드를 설명합니다. (39~42쪽)
고독에게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저도 이 편을 본 것 같아요. 여기 나온 집과 밥에 관한 이야기가 익숙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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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그리고 비보이 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42~46쪽)
고독에게 저도 어릴 때 학교에서 춤을 좀 췄습니다. (실수) 지금도 설거지를 비롯해 각종 집안일을 할 때 뉴진스의 춤을 따라 추곤 합니다. (잘못) 내적 댄스 아닙니다. 굉장히 외적입니다. 소문내지 말아 주세요.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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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47~49쪽. fin.)
고독에게 아이들에게 그 시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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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아니고 버드나무
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버드나무를 미루나무로 알고 있었다는 작가님의 사연도요. (50~53쪽)
고독에게 작가님이 미루나무라고 하면 미루나무인 것입니다. 자 같이 해봐요. 이제부터 버드나무는 뭐다? ‘미루~처럼 생긴 버드나무’ 줄여서 미.루.나.무! ……광기의 편애를 거두고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렇게 구분해요. 미루나무는 추운 날 자전거 타고 쌩쌩 달리는 머리카락 같고요. 버드나무는 비 맞은 곱슬머리 머리카락 같아요. (이게 더 광기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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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만난 여러 나무의 이름에 대해 그 비밀에 관해 작가님만의 문체로 말하고 있어요. (53~59쪽. fin.)
고독에게 나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왜 순해지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관심이 참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나무나 숲에 눈이 많이 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전히 나무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살아가며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나무의 계절을 목격하는 일. 언젠가 나무와 함께 다음으로 가는 날 어색하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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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비하인드
초등학교 교사인 작가님의 친구분이 학교 정구부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60~61쪽)
고독에게 정구라는 종목은 처음 들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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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대회에 참가합니다. 과연! 그 결과는? (61~63쪽.)
고독에게 중고등학교 내내 아마추어 축구팀에서 활동했어요. 제가 팀을 만들어서 대표이자 주장으로 친구들을 영입하고 운영한 건데요. (제가 만들지 않으면 안 끼워줄 것 같아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친구들과 대전 곳곳을 함께 다니며 원 없이 뛰고, 카페를 만들어서 경기 결과와 선수 소개를 기사처럼 작성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제의를 받아 한 축구 사이트에서 칼럼을 연재했는데 그게 저의 공적 글쓰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축구로부터 얻은 게 많지요? 그래서 지금도 축구는 제 세계관의 일부입니다. 이젠 오 분도 뛰지 못할 파렴치한 몸으로 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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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후 선생님이 간담회를 준비합니다. 보고서에 담지 못할, 직접 발표할 내용이 적혀 있어요. (63~66쪽.)
고독에게 저는 이 내용을 ‘우리 아이를 엘리트로든 취미로든 운동을 시켜도 될까’ 고민하는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선택은 그보다 더 다양한 기준과 고민하에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먼저 듣고 다른 기준들을 고려해 보는 게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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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님 선생님(teacher)의 글쓰기 교실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걸어가는 티처를 뒤에서 따라오던 누군가 외쳐 부릅니다. 드디어 마주한 두 사람. 티처가 묻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66~72쪽. 📗. fin.)
고독에게 ‘무슨 일이세요?’ ‘왜 그러세요?’가 아니라 ‘무슨 일일까요?’ 이런 게 너무 좋아요. 그냥 왜 불렀냐고, 그 이유를 묻는 게 아니라 혹 우리가 함께 알아야 할 무언가가 있나요? 묻는 듯한 뉘앙스라. 😁 처음엔 조금 엉뚱하다고 생각했는데 곰곰 들여다볼수록 무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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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기다리는 다음으로
이 꼭지에는 작가님과 ‘정’ 선생님의 일화가 쓰여 있습니다. (73~83쪽. 📗. fin.)
고독에게 소셜미디어를 보니 지난 주말에 작가님께서 이런저런 신작 관련 행사를 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이렇게 보는데 굉장히 반가웠어요. 행사라는 게 사실 특별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소중한 분들과 서점에서, 그 장소에서 무사히 행사를 하신 모습이, 오히려 잠시 미뤄둔 그러나 바라고 약속했던 일상을 마주한 장면처럼 다가오더라고요. 이 꼭지에 대한 단상은 이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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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가세요
작가님이 도시 잡지 에디터로 일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인터뷰어로 활동하신 내용이 가득한데요. 미숙 님과의 인터뷰도 있어요. (84~88쪽.)
고독에게 여름에 본 영화 《밀수》가 떠올랐어요. 거기서 해양 액션이 나오는데, 해녀 선생님을 인터뷰한 글을 읽으면서 또 느껴요. 바닷속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해녀분들이다! 왜? 수영을 잘해서? 숨을 잘 참아서? 그보다는 바다를 집이자 일터로, 본인과 연결된 세상의 일부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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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만난 사람들과 작가님이 기억하는 그분들의 인생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88~91쪽. 📗. fin.)
고독에게 이 책의 이야기는 크게 두 줄기로 돼 있지 않나 생각해요. 작가님이 겪은 ‘개인의 삶’과 보고 들은 ‘타인의 삶’.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다만 이렇게 나누어도 된다면, 이 꼭지가 타인에 관한 이야기 중 대표 꼭지가 아닌가 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지?’ ‘삶이란…몰까…?’ 이런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의 이 꼭지가 조금은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인터뷰 글(기사) 읽기를 좋아하는데요. 좋은 인터뷰 글은 안경 같아요. 어떤 인물이나 세상을 평소와 다르게,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해주니까요. 저는 김달님 인터뷰어라는 안경을 쓸 때마다 생의 애착을 배웁니다. 언젠가는 작가님의 인터뷰집이 나오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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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손
작가님이 어느 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96쪽.)
고독에게 고등학교 때 음악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포기한 적 있어요. 선생님께 많이 맞기도 했지만, 그래서 포기한 건 아니고요. 아무도 지지해 주지 않았어요. ‘아무도’는 저를 포함하는 말이고요. 자신 없었어요. 인생을 생각하면 늦은 게 아니었지만, 대학을 생각하기엔 많이 늦은 시기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음악을 하겠다니.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무책임한 꿈이었지요. 그래도 곡을 너무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할 줄 모르니까 가서 배우려고 한 건데. 히히) 그 마음이 남아서 뒤늦게 피아노를 배우려고 한 적 있어요. 어떤 분(?)과 달리, 친구에게 하루 배우고 말았습니다. 악보도 제대로 못 보니 그냥 막 외워서 둥당둥당 치는데 이걸 어느 세월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편지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된 셈이지요.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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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피아노 선생님을 만납니다! (96~99쪽. 📗. fin.)
고독에게 여기 나오는 어린이 선생님과의 대화는 교과서든 시집에든 실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단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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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와서 다행이야
이 꼭지의 화자는 작가님이 아닙니다. 호칭이 나오지 않으니 ‘선생님’이라고 할게요. 선생님께서 작가님께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00~109쪽. 📗. fin.)
고독에게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울지 않기란 어려울 것 같아요. 진심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정말 새삼스럽지만, 작가님 문장 너무 귀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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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분의 일의 확률
작가님이 서울역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탑니다. 여하한 이유로 인터뷰어 모드로 변하는데요. (110~115쪽.)
고독에게 택시에서의 대화를 읽으니 옛 생각이 납니다. (아련) 어느 날 친구들과 새벽에 택시를 탄 적 있어요. 다음 날 일어나 보니 기사님의 전화번호가 제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더라고요. 친구들 말론 어제, 그러니까 택시를 탄 새벽에 저는 기사님과 꽤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목격담에 의하면, 기사님이 저와의 대화를 즐기시는 것 같았대요. (리액션 좋은 편) 급기야 본인이 일하던 곳에 소개해 주겠다면서 번호를 주셨다는데… 저는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억이 없습니다. (만취해도 티 안 나는 편) 그래서 조용히 연락처를 지운 기억이 납니다. 기사님, 보고 계시지요? (그럴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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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한 작가님이 누군가를 떠올립니다. (116쪽. fin.)
고독에게 그럴 때가 있어요. 어쩐지 마음이 조금 솟는. 마침 지금 아침 해도 솟는. 방금 깨었다가 금방 잠들고 말 다정한 마음이 머무는. 저는 작업하다가 종종 그런 아침을 맞는데요. 다들 자고 있을 테니 인사를 건네지는 못합니다. 조금 아쉬워요. 그 순간 제 다정은 꽤 괜찮거든요. 하. (가끔 자기에게 취하는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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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하는 일
작가님이 집필 작업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117~119쪽.)
고독에게 저는 밖에서 글을 못 써요. 그렇다 보니 작업실의 지도랄까요. 그게 너무 좁아요. 예전에 친구가 일하는 ‘Cuzz you are my girl’(역자 주: 카페베네)에서 가게 컴퓨터로 작업한 적 있는데요. 간단한 콘텐츠 만드는 데도 되게 오래 걸렸던 기억이 있어요. 밖에서 잘(?) 쓰시는 분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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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알고 지내던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글을 쓰던 분이라고 해요. (119~120쪽.)
고독에게 유독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이석원 작가님의 《보통의 존재》였나요. 운전하는데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좋겠다 다들 바빠서’ 이런 뉘앙스가 담긴 문장을 읽은 적 있어요. 저도 가끔 여기저기서 다른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데요. 그중 ‘이번 책 너무 안 써진다’ ‘계약이 여러 개 밀려 있어서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워해요. 각자의 고통을 폄훼하면 안 되는데, 남의 고통이 더 견딜만한 고통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막상 제가 그 시간에 놓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고 그럴 거예요. 예전에 써둔 (이런) 글을 들추며, 아이고 이 경솔한 인간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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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작가님의 다짐이 나옵니다. (119~120쪽. fin.)
고독에게 공감해요. 작가님이나 저나 뭐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글 쓰는 사람들은 글 한 편 쓸 때도 정말 여러 방법으로 시도하고, 고민하고 그러잖아요. 그것이 다른 노동에 비해 대단하거나 중요하거나 힘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쓰는 사람들끼리 아는 그런 힘듦은 있겠지요. 그래서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시작한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에게 우정의 마음을 보내요. 보고 계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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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야
대합실 의자에 앉은 작가님이 나옵니다. 누군가를 관찰하고 있는데요. (123~125쪽.)
고독에게 작가님은 작가가 안 되셨다면 탐정이 되셨을 것 같아요. (셜록급 관찰력!) 저도 혼자서 혼잡하지 않은 대합실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순간을 꽤 좋아하는데 문득 그 장면이 아른거리네요. 지금처럼 날이 조금씩 선선해질 무렵이 대합실 풍경의 제철인 듯해요. 아 기차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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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분과의 대화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125~127쪽. 📗. fin.)
고독에게 ‘달님 유니버스’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분의 말이 이 꼭지의 제목이지요. 저도 기사 마지막에 이 문장을 인용했어요. 내일을 믿지 못할 때 힘이 되는 말인 듯해서요. 그리고… 윤슬처럼 반짝이는 문장으로 1부의 막이 내립니다. 어쩐지 기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갈 것 같은 마무리! 이제 ‘사랑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이야기’로 가야 하지만 오늘 함께 읽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함께 읽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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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1/2)
지난주 토요일, 기사를 마감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끝났구나. 정말 그렇구나.
왜 그랬을까요?
세 편째 편지에서 말씀드린 적 있지요. 읽고 쓰는 저의 활동은 김달님 작가님의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수오서재, 2022)를 만나고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요.
그렇게 김달님 작가님의 책으로 첫 페이즈를 열었고, 한 해 넘게 해오다 다시 작가님의 책에 기대어 마감하려니, 문득 하나의 페이즈를 닫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저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적은 후일담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작년에 그랬듯 이번에도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부터 조금씩 준비해 온 것 같아요. 다만 지금 다시 원고를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몰려올 테니 여기서 멈추고, 평소와 달랐던 걸 이야기해 볼게요.
우선, 발행일이 달랐어요. 송고 후 하루 이틀 안에 나오던 기사가 하필 매체 사정으로 연기된 거지요. 이제는 수정할 수 없는 원고가 어서 발행돼야 제 마음에서도 떠나보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계속 다른 작업 하면서도 마음이 가는 거예요.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나 봐요 😂)
두 번째는, 올해부터 저는 기사의 문단 별 글자 수를 (거의) 정확하게 맞춰왔어요. 만일 2,000자를 쓴다면 333자로 여섯 문단을 쓰는 방식으로. 논리적인 글짓기는 건물 짓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단별로 의미와 분량의 균형을 이루려고 그랬던 것인데요. 오랜만에 자유롭게 썼습니다. 제약을 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약간 모래주머니 해제한 느낌? 근데 왜 더 느려...)
마지막으로, 지운 부분을 말해볼게요. 하나의 단락을 지웠습니다. 단락의 제목은 ‘김달님이라는 문학’이었어요.
에세이는 문학의 범주에 포함돼 있지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나 저는 문학적인 관점에서 에세이를 들여다보는 시도가 다소간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비평 에세이는 많은데 에세이 비평은 충분해 보이지 않아요. 단순히 제가 자주 접하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어떻든 작가님의 책을 문학적인 관점에서 말해보고 싶었어요.
문장과 태도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웠어요. 세부적인 내용을 분류 없이 말해본다면 문체(이건 기사에 담겼지요), 공공성(여기서는 공공언어에 관한 작가님의 인터뷰를 참고했어요), 시대 기록(이것도 조금 다른 형태로 담겼네요), 사회 의제(여기에는 작가님이 ‘문화다양성’에 기고하신 글을 인용하려고 했어요)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다만 제대로 다루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지우게 되었습니다. (분량 문제도 있었고요) 기회가 된다면 ‘작가론’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은 주제에요.
그나저나 엄지, 괜찮으신가요? 어쩌다 보니 오늘도(…) 긴 편지가 되었네요. 말하고 싶은 게 많은 책이라서 그런가 봐요. 작가님의 다음 책도 그렇겠지요. 그때도 저는 쓰고 싶어요. 그때는 제가 읽고 쓰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더는 쓰는 사람으로 살지 못해도, 늦더라도, 단 몇 줄의 흔적이라도.
왜냐고요? 그 이유는 다음 편에 담았습니다. 이어서 함께 읽을 그날이 기다려지네요. 그러면 우리 다음 주에 만나요, 건강하게.
(지난 편지에 이은)
연쇄 분량 조절 실패를
기다려진다는 말로 숨기는
뻔뻔한 이 새벽,
이학민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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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님 작가님의 책을 읽고 쓴
「고독에게」 발행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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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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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독서 후기 말고 좀 다른 방식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해봐요. 첫 프로그램 어떠셨나요? 책 또는 ‘함께 읽고 싶어서’에 관해 전할 말이 있다면 답서해 주세요. 선생님의 감상을 전해주신다면 정말로 함께 읽기가 가능하겠지요? 아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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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반가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언제나 귀하고 든든한 마음을 보내주시는 한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읽으셨다면서 추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주셨어요. 정말 뿌듯했답니다. 좋은 책을 추천했다는 점에서. 그 책을 우리가 함께 읽었다는 사실에! 읽고 쓸 때만큼은 ‘당신 글 좋았어’ 보다 ‘당신이 말한 그 책 좋았어’라는 말이 듣고 싶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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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편지에 담은 책을 아직 읽지 못한 선생님도 있겠지요. 나중에 읽고서 ‘맞아, 우리 편지에 이 책 이야기가 있었지’ 들춰봐도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함께 읽고 싶어서’를 보낼게요. (편집자 주: 해보니 아주 자주는 힘들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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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게」를 통해 전하고픈 선생님의 이야기(신간 출간, 전시 소식 등)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추신을 통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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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 있어요. “명절을 앞둔 마음이 조심스럽다. 명절 인사를 건넬 때도 ‘즐거운’ ‘재미있는’ 같은 형용사를 함부로 더하지 못한다. 대신 ‘무사’라는 단어로 인사한다. 이번 명절에는 몸과 마음이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모두 무사한 연휴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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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가 훨씬 더 재밌고 유익하다는 (가짜 뉴스?) 소식이 추석을 앞둔 귀경길 행렬을 들뜨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 다음 주에 편지로 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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