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 길어질 때마다 선생님께 안부를 묻고 싶어집니다. 이번에도 그렇더군요. 긴 연휴가 끝나서 아쉬운 분도 많겠지만, 저는 다시 인사를 건넬 수 있어서 좋아요.
연휴 무사히 보내셨나요, 선생님. 혹 아프진 않으신지 걱정이 되네요. 저는 괜찮습니다. 연휴 동안 평소처럼 작업하며 전도 부치고, 친구들도 만나고, 등산도 하면서 체력이 조금 달리기는 했지만, 아직(?) 멀쩡합니다.
지난 편지에 이어 오늘도 김달님 작가님의 신작 산문집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미디어창비, 2023)를 함께 읽어봐야겠지요. 선생님과 함께 읽고 싶어서 혼자 읽으며 떠오른 것들을 먼저 적어 보내요. 이번에도(!) 기이이인 편지를 준비했으니 바로 시작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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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저자는 ‘작가님’으로 부릅니다.
- 수록된 개별 산문은 ‘꼭지’라고 부릅니다.
- 📙 : ‘다음 내용은 책에 남겨둡니다’
- 책과 함께 보시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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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공유와 답서는 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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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또 만나
작별의 순간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로부터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131~141쪽. 📙. fin.)
고독에게 작별과 재회, 현실과 소망이 뒤섞인 문장을 읽는데, 두렵다가 슬프다가 조금은 안도하다가 끝내 느려지고 말았습니다. 가장 오래 머문 곳은 가장 어린 딸이 건넨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항상, 항상 고마웠다는 말로 시작하는.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 아닌 호흡이. 언젠가 뱉어본 적 있는 그 절실함이. 씩씩한 마지막 문장은 한참 후에야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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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기분
작가님이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기 위해 외국에 갑니다. (142~146쪽.)
고독에게 작가님이 간 콘서트의 주인공은 아마도 BTS 아닐까요? 작가님이 BTS의 팬이라는 기사가 꽤 있더라고요. (아랍 사람도 안다는 소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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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146~151쪽. 📙. fin.)
고독에게 저는 단독 콘서트는 두 번 가봤어요. 두 번 모두 작년에, 엄마와 함께, 이문세 선생님의 콘서트였습니다. (전국 투어 공연이었는데 수원과 대전 두 곳에서 봤어요) 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공연을 볼 뿐인데 그 순간 현실에서 벗어나 그 현장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 함께 보는 사람과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는 것. 그건 정말 마법 같은 일이더군요. 그 후로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을 보는 저의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위해, 공연장 밖에서 더 잘살아 보기 위해 티켓을 사고 공연장에 가는 사람들이 근사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뮤지션 또는 창작자의 가치를 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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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부르는 노래
두 번째 작별과 가까운 사람들이 건넨 위로의 말이 담겨 있습니다. (152~160쪽. 📙. fin.)
고독에게 지난겨울,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에서 소식을 읽고서 꺼내지도 지우지도 못할 한마디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그 말을 품고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황망한 일을 겪었습니다. 올해 초 우리 집 강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저는 엉망이었습니다. 아니, 세상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온통 상실이라.
시간이 조금 흐르고. 작가님께 전하지 못한 말을 떠올렸습니다. 편지(이메일)를 보낼까 하다가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테고, 또 부담이 될까 봐 마음을 접었습니다. 잘 알지 못할 땐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편이, 말보다 침묵이 더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라서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 책과 관련한 일련의 행동은 얼마나 예외적인 일일까요)
봄이 오고, 작가님이 참여한 앤솔러지를 핑계 삼아 수신인을 지운 편지를 썼습니다. 기사로 에두른 거지요. 그 책을 읽고 기사를 쓸 계획은 없었는데 그렇게라도 제게 머문 말을 건네고 싶었나 봅니다. 하나 정작 그 한마디는 담지 못했습니다. 이번 책을 읽고 쓸 때도 그 한마디를 지울지, 남겨둘지 오래 고민하다 지웠고요. 지금도 달라진 건 없지만, 진심에 가장 가까운 우리 편지를 구실 삼아 뒤늦은 용기를 내 봅니다.
삼가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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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는 가능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꿈에서 만납니다. “꿈 밖에서는 가져본 적 없는 시간”이 펼쳐집니다. (161~167쪽. 📙. fin.)
고독에게 “그러게. 이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야. / 그리고 가끔은 이런 꿈같은 이야기가 우리를 살게 하지.”(《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수오서재, 2022, 16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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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던지는 아이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계속 더 자라는 동생에게 보내는 작가님의 편지를 읽어 봅니다. (168~175쪽. 📙. fin.)
고독에게 선생님은 이 꼭지를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군요. 저는 읽는 내내 복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설명하기엔 제가 가진 언어가 부족해서 곤란하네요. 뭔가 깊이 있는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었고, 그것이 묵직한 저음으로 다가왔다고 말할 수밖엔. 마냥 부드럽지도 그렇다고 날카롭지도 않은 이 문장의 목소리가, 그 무게가 마음에 턱 얹히더라고요. 그래서 소리 내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제게 이 꼭지가 가장 큰 울림으로 남은 이유는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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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흐려지는 날에도
프리랜서가 된 작가님이 라디오를 듣게 된 사연이 쓰여 있네요. (176~177쪽.)
고독에게 저도 어릴 때 라디오 참 많이 들었어요. 이소라, 김현철, 윤종신. 이런 분들이 진행하는. 요즘엔 팟캐스트 가끔 들어요. 늘 듣지는 못하고 이따금 찾아 들어요. 듣는 것도 좋지만, 영상까지 있으면 더 좋습니다. 표정으로 하는 말을 볼 수 있으니까요. 이따금 유튜브로 ‘책읽아웃’ 편집 영상을 다시 봅니다. 주로 몇 해 전 올라온 과거 영상인데요. 볼 때마다 느끼는 것: 다들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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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라디오 속 사연을 전하고 있어요. (176~178쪽.)
고독에게 🫨 (보령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보령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다른 지방분들은 모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새삼 매우 놀라 소리 지른 대천 아니 대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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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DJ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네요. (178~181쪽. 📙. fin.)
고독에게 뉴스레터를 발행한 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수신입니다. ‘오픈’ 목록에서 이름을 볼 때마다 책에서 DJ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정을 느껴요. 아. 닿았구나. 쓰는 순간이 고독으로 끝나지 않았구나. 감사하다.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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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하려고
아이를 상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82~188쪽. 📙. fin.)
고독에게 추석 연휴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한 친구의 큰애가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간대요. 그 친구의 결혼식 날 사회를 보려고 연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런 말을 하며 이것저것 묻는데 옆에 앉은 다른 친구는 웃고만 있더군요. 아. 쟤는 애가 둘이지. 큰애가 이미 초등학생이고. 그날 그 자리에 오지 않은 한 친구의 아이는 고등학생이라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제게는 여전히 생경한 그 이야기를 듣는데 이 꼭지가 떠오르더군요. 최근 다시 읽은 (김봄동 선생님 선정 ‘2018 올해의 책’) 《나의 두 사람》(어떤책) 속 ‘마더’라는 꼭지도 떠올랐습니다. 두 편 모두 아이 있는 삶을 상상하는 작가님의 글이었는데요. 저도 가만히 아이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신형철 선생님의 《인생의 역사》(난다, 2022)에는 이런 문장이 나오지요.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26쪽) 가슴이 뻐근하도록 아름다운 다짐이지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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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밖에서도 가능해
작가님 동생의 목소리인 듯해요.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달력 놀이를 말하고 있네요. (189~190쪽)
고독에게 다시 《나의 두 사람》을 말해볼게요. 큰 달력. 그걸로 어린 작가님이 숫자 세기를 했고, 할아버지께서 책꺼풀도 만들어주셨다는 내용. 다시 읽어서 기억합니다. 저는 어릴 때 그 달력으로 딱지를 접었던 것 같아요. 커서는 주로 전 부칠 때 바닥에 깔고요. 이번에도 느꼈지만, 저는 동그랑땡을 굉장히 잘 돌립니다. 만일 그것이 아시안게임 종목에 있었다면! 집에서 돌리면서 봤겠지요. (…출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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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겪은 할머니와의 일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 그러니까 둘만 아는 비밀이 나와요. (190~192쪽. 📙. fin.)
고독에게 동전이 나온 대목에서 오백 원을 오백만 원으로 읽었어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하다가 ‘내 눈에 욕망이 가득하구나 싶어서’ 반성하다가 마지막 문장을 읽고 눈이 젖고 말았습니다. 이따금 생각합니다. 떠난 이들은 모두에게 다르게 기억된다는 것. 다른 형태로 살아간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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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되는 글쓰기
글을 쓰다 고뇌하는 작가님. 안에서 밖으로 나옵니다. (193~195쪽.)
고독에게 저도 쓰다가 멈출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 한참 걷습니다. 이제는 다른 고민이 생겨도 걷고, 고민 없이도 걷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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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덕 선생님과 메모와 고모들과 카페 손님까지, 삶과 이어진 글의 조각들이 펼쳐집니다. (195~205쪽. 📙. fin.)
고독에게 그렇게 시작된 글, 앞으로도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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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면 있는 사람들
문화 예술의 도시, 창원과 창원의 예술인에 관한 소개가 적혀 있어요. (206~210쪽.)
고독에게 여기는 뭔가 글이 힙합니다. (홍대가 창원에 있던가요?) 밴드도 나오고 칵테일도 마시고 그래요. (저는 대전에서 혼자 살고, 네, 이제 이건 그만할게요) 타인에 관한 글을 쓸 때는 그 대상을 생각하며 쓸 텐데요. 전작도 그랬지만, 작가님이 다른 사람을 떠올리며 쓴 글들은 그 정서가 조금씩 다른 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관계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거겠지요. 이 글은 친구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아, 힙한 친구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작가님과 또래이기도 하니까요) 약간의 너스레를 더해 말해본다면 다른 글은 정자세로 쓰인 듯하고, 이 글은 턱을 아주 조곰(오타 아닙니다 ) 들고 쓴 듯한. 그만큼 살가운 우정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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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지 않고,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210~213쪽. 📙. fin.)
고독에게 저도 지방 창작자로 살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혼자 살고(제… 제발 그만!) 소주는 이제 잘 안 마시고요. 창작자를 곁에 두고 사는 감정이 어떤 건지 저는 모릅니다. 경험이 없으니까요. 이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계속 다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면 저도 알게 될 날이 올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많은 요즘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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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나면 잠수 타
작가님과 고모들의 로또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214~223쪽. 📙. fin.)
고독에게 따뜻한 생활감이 느껴지는 이 꼭지는 사전 연재에도 있었지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꼭지예요. 반갑고 애틋한 마음으로 읽다가 명작이 한 편 떠올랐어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초대형 단편소설인데요. 지은이는 저입니다. (뻔뻔) 재작년쯤인가. 한 소설 공모전에 출품할 생각으로 구상했더랬지요. 거기에 이 글처럼 로또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있어요. 거의 백수입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친구가 ‘오늘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라며 그에게 로또를 건네줍니다. 다음 날 보니 당첨이 됐네요. 1등은 좋든 싫든 준 사람에게 말해야지요. 2등은 양심이 있거나 겁이 많으면 실토할 테고요. 4등이나 5등은 숨길 이유가 없어요. 3등은? 3등은 어떨까요?
구상 당시 3등 평균 당첨금은 150만 원으로 기억해요. 직장인 한 달 월급도 되지 않을 금액이지만 주인공은 기분이(가) 좋습니다. 지금 딱 필요한 금액이거든요. 친구에게 이야기해도 돌려달라고 하지 않을 테고요. 그런데 우연히 ‘돈 앞에 친구 없다’ 뭐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고민하던 주인공은 그래도 의리(사실은 양심)가 있지, 하고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친구는 로또를 준 기억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갑자기 돈이 필요해졌다고 이야기하자, 주인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답답하지요. 그냥 말하면 간단한 문젠데. 그게 이 소설의 묘미(?)입니다. 또 소설답게(!) 당첨금을 나눌 수 없는 사정도 생기고요. 이어지는 소설의 결말은 나중에(?) 확인하세요! 발표도 안 해놓고 왜 스스로 스포하냐고요? 괜찮아요. 하나의 레이어만 말씀드렸고, 그조차 이 편지에서만 말했으니 문제가 생긴다면 범인은 이 안에 있다. (👀 장르가 추리물이었어?) 그런데 사실 저는 로또를 사 본 적이 없습니다. (😌반전물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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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먼저 자는 사람
제목처럼 먼저 자는 사람의 이야기. 그 사람의 기숙사 시절의 이야기가 이어져요. (224~227쪽)
고독에게 기숙사 방바닥에서 나란히 누워 자는 장면이 나오지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기숙사는 아니었고요. 대학 시절, 저의 자취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경도의 공황증을 겪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자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겁니다. 밖으로 나와 한참 서성였지요. 사실, 더 어린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요. 극복은 모르겠습니다. 그때그때 다르기도 하지만, 이제 여럿이 좁은 곳에서 붙어 자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과거보다 방이 넓고, 사람은 적으며, 저는 취해서 잠드니 확인할 기회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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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스르르 깨어난 새벽 혹은 아침의 마음이 적혀 있습니다. (227~231쪽. 📙. fin.)
고독에게 “혼자 깨어있는 밤이 무섭다기보단 편안하고 슬프지 않을 만큼 외로웠다.”(229쪽) 자꾸만 안고 싶은 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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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한 환대
대학교 기숙사에서 만난 G언니와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232~234쪽. 📙.)
고독에게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 작가님과 달리, 저는 기숙사에서 살아 본 적 없습니다. 매번 자취를 했어요. 친구(들)와 살거나 혼자 살았지요. 그때 배운 게 있다면 공동생활이 정말 어렵다는 사실! 작가님은 스스로 신기하게 여길 만큼 불편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저는 누구와 살아도 불편하더라고요.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예전 편지에서 저는 혼자 고독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적 있지요. 그래서 그런 듯합니다. 생활이 섞이는 일을 좀처럼 견디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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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의 작별과 재회.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이 나옵니다. (234~244쪽. 📙. fin.)
고독에게 무너진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애씀. 이 또한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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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도 바다니까
바다에 간 작가님. 바다에 간 이전 기억을 떠올립니다. (245~249쪽.)
고독에게 저는 바다를 좋아해요. 다만 들어가지는 않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그래요. 바다를 ‘바라본다’의 준말처럼 여기고, 바라만 봅니다. 그래도 저는 좋아합니다. 기회가 되면 바다 입장도 좀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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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대하는 작가님의 태도가 담긴 문장이 나오네요. 여기서 ‘바다’는 ‘인생’으로 바꿔 써도 될 것 같습니다. (249~251쪽. 📙. fin.)
고독에게 책에 나온 비유 중 공연장 리액션(?)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요. 저는 신나는 공연을 볼 때는 부끄럽지 않아요. 쌓아둔 흥을 대방출하듯 신나게 소리치며 발을 구릅니다. (공연장에선 나도 흥민이야!) 그때의 부끄러움은 옆 사람의 몫이고요. (이렇게나마 나눔의 가치를 실현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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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황금비율
믹스커피에 관한 작가님의 열렬한(!) 사랑이 쓰여 있습니다. (252~258쪽. 📙. fin.)
고독에게 믹스커피나 자판기 커피 하면, 군대가 떠오르는데요. 이제는 작가님의 책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놀랐어요. 그렇게 많이 마셔도 되는구나(?) 싶어서. 저도 커피를 정말 좋아하지만, 불면증이 있어서 하루 최대 두 잔만 마시고, 그조차 저녁이 오기 전까지로 시간제한을 두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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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제나 마지막에
초등학교 교실에서 시작해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에게로 이동하는 시선. 곧 다음으로 향하려는 듯한데요. (259~264쪽.)
고독에게 여기서 잠시 우리가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말해볼래요?
우리는 얼마나 같나 다르나 체크리스트 5
- 나는 소문난 길치다.
- 나는 걱정이 많다.
-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 나는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한다.
- 나는 자책을 자주 한다.
저는…이라고 운을 떼다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건 체크리스트가 아니고 자기소개였네요. (🤣) 그래도 따져 보자고요. 우선 1번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명백합니다. 앞문으로 나가서 뒷문으로 들어가는 편이에요. 다른 곳인 줄 알고. 2번은 항상 그렇지는 않고요. 주기나 시기가 있어요. 하필 우연히도 지금이네요(!). 3번은 음… 사실 낯을 가리는데 주변에서는 안 믿어요. 저도 노력하는 건데. 4번은 사실인 것 같아요. 상대를 경계하거나 밀어내는 게 아니라 제가 마음을 조금만 주는 방법을 몰라서, 아예 주지 못할 때가 많아요. 5번은 뭐 정체성 중 하나이지요. 한때 제 일상은 자책 아니면 산책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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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265쪽. 📙. fin.)
고독에게 이 꼭지의 마지막 문장은 그 자체로 다음 편(다음 꼭지든, 다음 책이든)의 예고처럼도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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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안는 삶
할아버지께 보내는 작가님의 편지입니다. (266~271쪽. 📙. fin.)
고독에게 말갛고 아름다운 이 편지에 제가 더할 말은 없겠습니다. 어느덧, 가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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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빼곡한 계절이 있습니다
버티고 버티다 기어코 늦은 밤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하는 계절이 있습니다
그저 바람이 불었을 뿐인데
마음이 넘어지고,
밤이 되었을 뿐인데
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
차마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가을이
우리 생애
꼭 한 번은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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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2/2)
‘못다 한 이야기 1’에서 예고해 드린 대로 제가 이러는(?) 이유부터 말해보겠습니다. 더는 쓰는 사람으로 살지 못해도 김달님 작가님의 책을 계속, 읽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좋은 시간을 선물해 준 책에 대한 작은 성의.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종종 생각합니다. 결론은 매번 바뀌지만,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댓글 달고 싶은 책. 그러니까 자꾸 말을 걸게 되는 책. 그러나 하지 않음이 더 많이 남는 책. 제게는 김달님 작가님의 책이 그렇습니다. 읽다 보면 속으로든 겉으로든 혼잣말하게 되더라고요. 건네지 못할 질문도 잔뜩 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안에서 반응하는 사고와 감정에 저는 조금 놀랍니다. 실제의 저보다 더 나은 인간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사에도 적었지만, 미세하게나마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을 저는 스승처럼 여깁니다. 스승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것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자기 신뢰라고 생각하고요. (우선 그것이 성립돼야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고도 믿습니다) 작가님의 책에는 믿고 싶은 말들이 쓰여 있습니다. 믿고 따르면 나도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기분이 드는 시간을 받고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기분을 알리고자 두 가지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이지요.
둘째. 기다리기 전에 할 일인 것 같아서. 어떤 책에 관해 말하기 좋은 때란 ‘언제나’일 것입니다. 다만 무엇이든 제철은 있는 법이겠지요. 책이라면 출간 직후가 제철인 듯합니다. 꼭 책이 나온 순간에만 책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 시기만의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이 책의 그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이제 한동안 기다려야 하니 한마디라도 더.
이 책만 하더라도 1년 넘게 기다렸습니다. 물론 출간 간격이 1년 내외라면 긴 시간은 아닐 것입니다. 신작을 만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으니까요. (일테면 3년 만에 출간된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처럼……? 😋) 간격이 어떻든 다음이 오기 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기 전에 할 일은 ‘그 책을 충분히 말하기’가 아닐까요?
이러한 이유로 한 권의 책을 몇 주간 말해봤습니다. 책을 즐기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므로 글의 성격은 때로 진지하고 신중하게, 또 때로 경쾌하거나 조금은 장난스럽게 썼고요. 기사(북칼럼)와 뉴스레터(북코멘터리)라는 두 가지 형식으로 담아보았습니다.
작업하며 어려웠던 것은 속도 조절이었습니다. 책을 여러 번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으며 써야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느린 독서를 하는 동안 행복한 기분을 느낀 적이 많습니다. 슬프고 아름다운 감정에도 자주 넘어졌습니다. 작가님의 신작을 읽을 수 있어 좋았고, 쓸 수 있어 기뻤습니다.
그렇게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다가 문득 쓰는 기분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상실의 시절을 보내며 책을 쓰느라 얼마나 애쓰셨을까. 눈앞에 결과물을 만지며 이런 짐작도 해봅니다. 그는 되게 큰 사람이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글 쓰며 종종 다짐합니다.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잘하자. 이 두 가지는 원인과 결과도, 선택도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연결된 희망 사항 정도겠지요. 저도 작가님처럼 두 가지 모두 해내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일합니다. 하나 요즘엔 조금 막막한 기분도 듭니다. 쓰는 일을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러한 와중에 이렇게 좋은 책에 푹 빠져 즐겁게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넬 시간이 왔네요. (저는 매번 이 시간이 굉장히 서운합니다) 상실의 시간 속에서 믿고 싶은 글을 쓴 김달님 작가님과 그 원고를 함께, 세상에 꺼내주신 김미라 편집자님. 그리고 발행인의 광기 어린 편애와 기이이인 편지에도 불구하고 (호환·마마만큼 무섭다는) 구독 취소(!) 없이 함께해 준 우리 선생님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김달님 작가님은 책에 ‘쑥스럽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시더군요. 사실 함께 읽고 싶어서를 하는 동안 저도 그랬습니다. 부족한 창작자라서, 부끄러움 많은 독자라서 그랬겠지요. (이 후기에 난처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으셨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책에 관해서건 이 시간에 관해서건 여전히 못다 한 말이 많지만(한도 끝도 없어 마치 블랙카드) 이렇게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열네 번째 편지로 다시 만날 날까지 무탈하시길.
달님 작가님도
‘달님 유니버스’의 모든 출연진(?)도
그리고 이 편지를 읽는 선생님도
모두 잘 됐으면 하는 이 새벽,
이학민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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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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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코멘터리 형식으로 준비해 본 「고독에게」 함께 읽고 싶어서 첫 동행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어떠셨나요? 선생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답서는 언제나 반갑습니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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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함께 읽고 싶어서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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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는 가라! 진짜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작가님이 참여한 ‘진짜’ 코멘터리북이 전시 중이라고 합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사적인 서점’에서 김달님 작가님의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를 주제로 ‘한 사람을 위한 전시회’를 하고 있다고 해요. 파주는 왜 대전과 가깝지 않은 것일까요? 가까운 곳에 계신 선생님께서는 그곳에서 ‘진짜’를 만나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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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님 작가님 책은 제가 다 읽은 것 같지만, 놓친 것(?)도 꽤 많습니다. 요컨대 동료분들과 구독 서비스를 하셨을 때 저는 구독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신간을 기다리며 사는 독자를 위해 혹 구독 서비스를 다시 하실 계획은… 없으실까요? (어딜 보고 묻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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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산책하다가 금방 들어와 버렸습니다. 벌써 날이 춥더라고요. 그러니 선생님, 건강 유의하시고요. 우리 또 편지로 만나요.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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