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끝나가요. 말도 안 돼. 올해의 절반이 지나가다니.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 거죠? 이런 의문이 들면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어집니다. 방법이 있긴 해요. 무언가 고대하면 됩니다. 시간은 장난기 많고 눈치가 빠르거든요. 진실로 고대하면 알아서 지연됩니다. 우리가 바라 마지않는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시간이 더뎌지면 편지를 씁니다. 성가신 마음을 잠시 재우고, 마음 갈 길을 답사하는 마음으로. 아시다시피 지난달엔 그러지 못했고요. 프로젝트가 연이어(그것도 동시에) 진행돼서 좀 바빴습니다. 기실 지금도 그래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되짚으며 작업하느라 정신없네요. (오늘이 몇요일이죠?)
라고 엄살 부려놓고도 민망합니다. 우리 「고독에게」 구성원 중에는 출판인 분들이 계시거든요. 얼마 전에 서울국제도서전이 끝났잖아요. 얼마나 바쁘셨을까요. 저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명함이 없습니다)
도서전은 와이파이로 보았습니다. 해마다 그 시기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온통 그 얘기뿐이잖아요. 올해는 출판사 무제 대표님 목격담이 가장 많더군요. 제가 본 것 중 절반 아니 그 이상인 듯해요. 그럴 만하죠. 그분의 행보 하나하나에 현장에 없던 저까지 휘둥그렜으니까요.
그분은 어느 부스에 가든 환영받더군요. 그럴 만하죠.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는데 어떻게 참아요. 마케터 분들께서 그분의 방문을 성실히 기록해 올려주신 걸 보면 마음뿐만 아니라 산업에도 큰 영향을 주는구나 싶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참아요.
저에겐 무제가 친숙합니다. 요즘 보는 영상이 온통 《첫 여름, 완주》(김금희, 무제, 2025)에 관한 프로모션이거든요. 선별한 건 아닌데요. 곧 출판 제작자가 될 운명(?)이다 보니 우연히 발견해도 끝까지 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처음 저 책이 출간될 때만 하더라도,
어? 이거 반칙인데?
싶었습니다. 두 분의 선생님께서 추천사를 써 주셨는데 그게 너무 이상적인 조합이라서요. 여하간 요즘 무제 대표님의 영상을 자주 보면서 여러 가지 배우고 또 느끼고 있는데요. 정작 무제의 책은 아직…… 죄송합니다. (???: 난 아무렇지 않은데?)(???: 그거 정말 정말 잘됐다!)
도서전 얘기 계속해 볼게요. 서울국제도서전을 출판계의 명절이라고도 부르시더라고요. 잔치라고 생각하면 잔치니까 그렇겠지, 했는데요. 고맙거나 그리운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기 위해 도서전에 간다는 피드도 제법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인정했습니다. 명절 맞네.
명절이란 무엇인가. 아니 명절의 효용은 무엇인가. 보고 싶은 사람과 만날 명분을 주는 것 아닌가. 이렇게 어림해도 된다면 지금 저는 명절을 준비하고 있는 셈입니다. 선생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이 순간 작업에 매진하고 있으니까요.
늘 해온 일이라 새로울 건 없지만 마음가짐은 좀 다릅니다. 아무래도 작업의 끝에 연결의 시작이 놓여 있다 믿기 때문이겠지요. 미래에 가 계신 편집자 선생님과 독자 선생님을 종종 떠올립니다. 왜 종종일까요? 편지 쓸 때와 달리 작품(과 작품집)을 집필하는 동안엔 다른 생각할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밤늦도록 생각과 이야기를 언어로 옮기다 보면 의문이 찾아옵니다.
내가 지금 이걸 왜 하더라.
답은 정해져 있고요.
마침표 찍으려고 하지.
지금 이 시절이 두 권의 책이 돼 세상에 나온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구상할 적만 해도 겨울이었으니 끝은 먼일 같았는데요. 이제 그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럽니다.
월초에 친구와 영덕에 다녀왔습니다.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요. 대게가 되게…(안 돼!) 굉장히 맛있었어요. 오고 가는 데 오래 걸렸다는 점만 빼면 다 좋았습니다. 정말 멀더군요. 언제 도착하지? 계속 시간을 확인하는데, 아니 어떻게 십 분밖에 안 지났지? 놀라기를 여러 번. 그리고 네, 예정대로 도착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살아오며 해온 일들도 전부 그랬습니다. 지루하거나 지난한 시간을 견디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끝이 와 있더군요. 느리게 걷든, 서두르든, 애를 쓰든, 즐기든 마찬가지였습니다.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완주할 수 있었어요.
이번에도 그렇겠죠? 제가 찍을 마침표. 그 점이 선생님이라는 도착점에 가닿기 위해 오늘도 충실해야겠습니다.
책 작업하다 보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거나 자아를 들여다보는 생활이 이어집니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연구하게 되는 거죠. 재미없는 주제이지만 산문 쓸 때 건너뛸 수 없는 단계이기도 해요.
결론은 매일 달라지는데요. 오늘은 이렇습니다. 성실한 비관주의자.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요. 잘되든 안되든 묵묵히 가는 거죠. 나쁘기만 한 태도는 아닐 거예요. 기대 없이 순전하게 매진한다는 의미니까.
모쪼록, 올가을, 완주. 기다려주세요. 최선을 다할게요. 우리 무사히 만나요.
할 건 많고 진도는 더뎌서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쪼끔 두려운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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