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실까요 선생님? 제가 또 왔습니다. 후후. 두 달 만에 인사드리네요. 별일 있으셨어요? 저는 뭐 특별한 일 없었습니다. 책 작업하고 단편 마감 준비했어요.
벌써 9월이 코앞이네요. 시간 참 빨라요. 그러니까 지금 시간이……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네요. 월요일로 넘어가고 있고요. 이 편지를 언제 보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씁니다.
새벽인데도 날이 더워요. 습도도 높고요. 잠은 오지 않습니다. 어제도 새벽에 잠들고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말이죠. 몇 달간 이런 날이 많았어요. 나름 비상시기(?) 이긴 한가 봅니다.
출간 작업 중간보고를 드릴게요. 올가을 완주, 를 선언한 것치고 진행이 더뎌서 살짝 (사실은 꽤) 당황하는 중입니다. 일정을 잘못 계산하기도 했고요. 이대로면 11월 말이나 12월 초쯤 나오지 않을까 어림해 봅니다. 올해 안으로는 나옵니다. 재단 공모 선정작은 연말까지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거든요.
원고는 놀랍게도 마감하지 못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한두 달 전쯤 끝나야 했는데 말이죠. 계획을 지키려면 계획을 세우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봐요. 그러면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계획만 지키면 되잖아요. 이미 세워 버리는 바람에 지킬 게 많아 못 지키고 말았다, 이 말입니다.
초여름까지만 해도 원고가 너무(?) 많아서 금방 하겠다 싶었는데요. 반대로 너무 많아서 분류부터 선택까지 전부 다 일이더군요. (결국 다 새로 쓰기도 했고요) 시간이 지체된 건 원고의 개수보다는 기획의 변경이 많아서 그랬습니다. 네 번 정도 변경한 것 같아요. 장인이 도자기를 깨는 심정st. 그런 건 아니었고요.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납득 시키는 작업이다 보니까…… 꽤 어렵더라고요. (지금 기획은 꽤 만족합니다)
여하간 이 원고가 어떤 원고인지 설명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긴 했습니다. 이제 행정 절차나 여러 계약 건들. 그리고 후반 작업 등등등도 시작해야죠. 그렇다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만 남았다는 거겠고요.
그래서 잠이 안 오는 걸까요? 말씀드린 적 있지요. 이번 책은 다양한 분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고요. 여하한 사정으로 기획과 계획이 계속 변경되는 바람에 시도조차 못 했는데요. 안 돼요. 안 돼요. 그러면 작업하는 재미가 줄어들잖아요. 해서 고민 중이에요.
이 책, 다른 출판사에서 내면 어떨까? 한 번쯤 투고나 협업 제의를 해 봐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 이 단계가 지나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으니까. 어디든 폐 끼치기 싫어서 조심스럽긴 한데요. 궁리해 보고 있어요. 어디 광고라도 해볼까요? ‘동행을 찾습니다.’
그냥 메일을 보내, 라고 하셨나요? 후후 다 들려요.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걸리는 게 많아요. 무엇보다 시간이 우려됩니다. 계약이 성사돼도 말이죠. 저야 뭐 이 원고를 오래 보았고, 인쇄 들어가기 전까지 편집과 수정을 마치면 그만이니 무리가 없지만, 이 원고를 처음 보는 분들이 연말 전까지 출간 업무를 하실 수 있을까? 가능할까? 싶거든요. 다들 다른 계획이 있을 테니까요. 이래서 계획 금지법 이런 거 제정해야
말은 이렇게 해도 자꾸 여러 출판사 계정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그럴 시간에 내지 편집부터 하시지) 이러니 어떻게 고독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수가 있나요? 제가 터놓을 수 있는 곳. 여기가 유일할지도?
솔솔 졸리네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게요. 조만간 또 이어갈 거예요.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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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새벽 두 시 십육 분. 딱 하루 지나 편지를 이어가네요. 이렇게 매일 조금씩 편지를 이어 쓴 건 처음인 것 같군요. 오늘도 작업에 열중했습니다. 원고는 총 3부로 구성했는데요. 3부의 원고를 정리했어요. 이제 내지 편집에 들어가야지요. (내일의 나 잘해라)
오늘도 출판사를 틈틈이 찾아봤어요. 평소에 출판사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거만) 세상엔 출판사가 정말 정말 많더라고요. 많기는 한데. 제 원고의 고유성이 너무 짙어서 결이 맞는 출판사가 어딘지, 이걸(?) 선호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더군요. (재밌는 기획이 좀 많은데, 실행하면 즐거울 것 같은데, 이게 책으로 나오면 나는 읽고 싶을 텐데 후후)
1인(또는 독립) 출판사 계정에 그분들이 남겨 두신 일과 일상 기록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왜 우리는 이 번잡하고 고생스러운 책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가. 안 할 이유가 백만 개라도 할 수밖에 없는 연유가 더 커서 머무는 거겠지요. 우리가 어디서든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그거 하나잖아요.
여하간 책은 참 지독해요. 지독하게 매력적이야. 이 매력을 알리는 게 출판인과 독서 공동체의 역할이기도 하겠지요. ‘내가’ 좋으니까, 사라지게 두지 않아야 ‘내가’ 좋을 테니까.
북디자이너분들의 계정에도 찾아가 포트폴리오를 구경했어요. 뭐야 왜 이렇게 예뻐요? 요즘 책은 다 아이돌이에요. 개성 넘치고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어요.
그래요, 사실 책 구매에 표지의 영향이 있을 때도 있어요. 내지도 유심히 봅니다. 만듦새라는 게 꼭 텍스트로 한정할 순 없다고 봐요. 기능에 적합한 아름다움. 그게 중요하겠죠. 이렇게 써놨으니 두 번째 소품집이 못생기면 큰일 나겠군요. (다행히 표지 디자인은 제가 하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타인의 계정을 떠돌다가 아는 사람 계정에 뭔가 올라오면 그렇게 반가운 거 있지요. 후후. 그리고 문득 선생님이 그리워져요. 그럴 땐 보내주신 편지를 꺼내 읽어요. 받기만 하고 보내지 않은 답서가 많아요. 잊고 살지 않아요. 생활에 두고 오래 읽습니다. 서울, 수원, 창원 등 여러 곳에서 온 귀한 마음들 대전 사는 제 머리에 두고 살아요. 든든하고 슬퍼요.
비밀인데요. 출간은 핑계고요. 선생님께 닿고 싶어요. 올겨울엔 「고독에게」 모임을 할까요? 후후. 계획을 세울 뻔했군요. 아이고야 큰 실수할 뻔했어요. 하마터면 못 만날 뻔했네요. 무계획으로 두자고요 :)
점점 의식이 흐려집니다. 너무 오해할 문장이었나요? 안심하세요. 제가 가진 하루치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는 소리였답니다. 내일 또 쓸까요? 아니면 보낼까요? 후후 대답하실 수가 없는데 물어보는 걸 보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요. 일단 지금은 어차피 보낼 수 없으니 여기까지 쓸게요. 이 아래 뭐가 적힐지 저도 궁금하군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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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2025년 8월 26일 오후 아홉 시 이십 분.
오늘은 좀 이르게 왔어요. 마감할 원고가 몇 개 더 남았는데요. 그래서 왔습니다. 후후. 몰입 전에는 딴짓을 해야 효과가 조크든요.
어제는 자려고 누웠더니 비가 오더라고요. 누워서 빗소리를 듣는데 거의 따귀 맞는 소리처럼 들리더군요. 어우 기후 위기. 더운 낮이 지나고 저녁에 나가 보니 바람이 선선했어요. 느리지만 가을이 오고 있나 봐요. 후후. 안 되는데... (ㅋㅋㅋ) 진짜 잠깐만 쪼곰만 시간 좀 멈춰주면 안 될까요?
올해는 내내 시간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뭔가 바쁘고 좇기는 느낌. 그래서 그런지 지난달이 한 해 전 같고, 연초가 전생 같고 그래요. (와 ‘낮과밤’에 간 게 올해 일이었어요?) 이러나저러나 이번 여름은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요즘엔 일이 어렵고 답답할 때마다 계속 웅얼거려요. 즐겁게 하자, 즐겁게 하자. 내가 하는 일은 과정이 괴로우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니까. 뭘 남기려고 하지 말고 좋음을 지금 내게 주자. 아끼지 말자.
그래도 휘청입니다. 그럴 땐 하기 싫은 것들의 목록을 씁니다. 저작권 사용 문의라든가 각종 계약이라든가 그런 처음 하는 일들이 단골(?)로 기재되죠. 써 놓고 미뤄요.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죠. 다들 이런 걸 어떻게들 매번 하시는지 정말 존경, 존경 또 존경합니다아.
자 그럼 ‘다큐 3일’도 아닌데 3일간 이어 쓴 편지를 마무리 지을게요. 오늘은 질척이지 말고 작별하죠. 안녕. 금방 또 올게요.
다시,
원고 보부상이 되어
동행을 찾는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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