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지도 북토크 이야기로 시작해야겠군요. 예정된 일정이었지만, 두 번 연속 같은 주제로 편지를 시작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요즘엔 온통 모르는 일들만 벌어지는 것 같아요. 매번 대비한다고는 하는데 원체 허술한 탓에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기분입니다. 이토록 정신없던(positive) 가을이 얼마만 인지.
지난주 일요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열린 북토크에 참여했습니다. 일종의 출간 기념회였어요. 지난봄, 편지로 전해드린 대로 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이었죠.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고 살아가는 중(이하 '서다살')』(공저, 282북스, 2025)이라는 제목의 문학 작품집이에요. 어떤 책인지는 부제를 들려드리면 될 것 같아요. ‘9인의 청년과 9인의 작가가 함께 쓴 관계의 기록.’
저는 ‘단우’(필명) 선생님과 함께 작업한 단편을 책에 실었어요. 선생님을 만나 대화하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관계에 관한 소설을 쓴 거예요. 말하자면 협업 소설이죠. 연결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제겐 무척 뿌듯한 작품입니다.
북토크도 무사히 마쳤어요. 이후 그 순간들을 차분히 반추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여독이라도 진하게 남았다면 그걸 핑계로 하루 이틀 쉬었을 텐데, 그랬다면 그날이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 따져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외국에 다녀온 것도 아니니 여독이랄 만 한 것도 없었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쉬지 않고 있거든요.
주말이나 연휴 없이 살아온 지 꽤 된 듯해요. 하루쯤 쉰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도 아닌데 말이죠. 바빠서 그렇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일 거예요.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동안 고독에게 쏟아진 말들이 제법 많더군요. 편지를 쓰려고 돌아보니 그랬습니다. 그 말들을 선생님께 전할 생각하니 ‘이게 휴가지’ 싶었고요. 마음이 편한 게 휴가잖아요. 편지를 보낼 때, 선생님을 떠올릴 때 저는 늘 안온해져요.
올해 세 번째 상경이었습니다. 전부 ‘서다살’ 때문이었고요. 매번 그랬듯 오전부터 설렘을 안고 출발했는데 점점 설렘 정도가 세지고 말았어요. 차분과 담담을 대전에 두고 온 듯, 행사 내내 들뜸을 가라앉히기 힘들더군요. 과거처럼 ‘들뜨지 말아야지’ 억누르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렇지. 너무 들떴어요. 저는 들뜬 제가 어색했고요.
필요 이상으로 들뜨면 일을 망치기 마련이지요. 집필 인생 첫 북토크도 그랬어요. 아무리 떠올려 봐도 잘한 기억이 없어요. 다음 날 담당자 선생님께서 전해주신 영상을 보니, 저의 기억은 애교에 불과하더군요. 한마디로 가관이었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감이 안 오실 테니 평점과 한줄평을 써볼까요?
- 평점: 3.3/10
- 한줄평: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동문서답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왜 자꾸 실실 웃어?
물음표를 썼지만 분석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유를 아니까요. 좋아서, 웃었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함께한 분들의 책임(!)도 얼마간 있다고 주장해 봅니다. 정말이지 그날은 고갤 들기 어려웠어요. 여기저기서 건네주시는 다정한 말들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저도 독자이지만 ‘잘 봤어요’ ‘재밌었어요’ 같은 소감이 이렇게 큰 말인지 감히 몰랐어요. 이제 알았으니 앞으론 좀더 신중히(?) 전하려고요.
제가 쓴 이야기를 말로 전하는 데 누군가 경청해 주고 질문해 주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행사가 끝나고 사인도 해드렸어요. 맙소사! 사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왜 짐작하지 못했던 걸까요? 되는대로 이름을 써 드렸는데, 하, 다시 전해드릴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이 서투름이 후회나 슬픔으로 남은 건 아닙니다. 떠올리는 지금도 웃어요. 잘하지 못했어도 저는 좋아요.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하고 싶다는 소망이 더 컸나 봅니다. 북토크 내내 그랬어요.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아서, 또 오래간 기다려 온 순간이라서.
꿈이라기엔 거창하지만, 상상한 적 많아요. 십 년도 더 전에 글쓰기를 업에 두기 시작할 무렵부터 독자분들 앞에 앉아 제가 쓴 작품에 관해 말하는 장면을 그리곤 했어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평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요. 그러나 이 모순적 태도가 아주 근거 없지는 않을 거예요.
어릴 적부터 사람들 앞에서 뭔가 중얼거린 적이 많아요. 한때는 진행병을 앓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전업 작가가 되었으니, 제 입으로 제 작품에 관해 떠드는 상상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지요. 상상이 상상에 그친 채 십 년 넘게 지나갈 줄은 몰랐지만요.
녹슨 입은 이제 손을 이기지 못해요. 다행인 줄 압니다만, 큰일이다 싶기도 해요. 작품을 작품만으로 설명하는 일. 그건 저자의 태도나 성정이 아니라 상황이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작품이 한 분께라도 더 닿으려면 저는 마구 떠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엉망이라니. 갈고 닦지 않으면, 연습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어떤 것이든 녹슨다는 걸 이번에 크게 배웠습니다. 그래도 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함께 한 분들과 함께해서 즐거웠어요. 이게 저의 결론이에요.
마지막은 아닐 듯해요. 두 번째 소품집에서도 북토크 계획을 세워두었거든요. 데뷔전을 떠올려 보면 너무 몰염치한 계획 아닌가 싶어집니다만, 읽고 쓰는 일을 멈추기 전에 단독 북토크도 한 번쯤 해 보고 싶어요. (될까요?)
말이 나온 김에 두 번째 소품집 소식을 전합니다. 가을 완주를 예고해 드렸으나 기어이 겨울로 넘어가고 말았어요. 11월 중 출간을 희망하지만 쉽지 않을 듯해요. 이맘때가 인쇄소의 성수기라고 하더군요. 책도 그렇고, 다이어리 생산도 많아서 이쪽에서 서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제작 진행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표지 디자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두 분의 디자이너분들께서 소통을 이어가고 계신 줄로 알아요. 어떤 표지가 완성될지 두근대는 마음으로 저는 원고를 다시 보았습니다. 교정을 다시 했어요. 이미 몇 주 전에 끝냈습니다만, 너무 감사하게도 한 편집자분께서 귀한 손을 보태주셨거든요.
한 사람의 손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가 다수의 일이 되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점점 일이 커지고 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과연 내가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아도 되는 걸까?’ 걱정이긴 해요. 아무려나 조금이라도 더 좋은 책을 만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봅니다.
늦어지는 출간에 저만큼이나 속 탈 분이 계셔요. 팔월의 편지에서 출간의 동행을 찾는다고 쓴 적 있지요. 여러 만남이 있었고 결론은 ‘혼자’로 끝났습니다.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작은 출판’을 이어갈 생각이었어요. 그게 저와 이 책의 크기에 맞다고 판단했고요.
독립출판을 (다시) 결심하고서 주변에 고견을 구하다가 평소 꼭 한번 협업해 보고 싶던 분께 편지를 보냈어요. 괜찮으시다면 독립출판 협업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내용이었죠. 그리고 그분께서 제 프러포즈를 받아 주셔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그분께서 지난주 북토크에 오신 것 아니겠어요? 예고 없이 깜짝 등장 후 가제본을 전해주시며 응원해 주시는 바람에 무척이나 든든했어요. 눈앞의 귀한 인연들에 한 분이 더해지니 더 들뜰 수밖에 없었고요. (보세요, 제가 들떠서 아무 말을 반복한 건 정말이지 저만의 탓이 아니에요!)
겨우 두 번의 출간, 고작 한 번의 북토크에 너무 유난 아닌가? 싶으시죠. 저도 동의해요. 그래서 조심스럽고 부끄럽지만,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이 순간을 억지로 담담하게 보내지는 않으려고요. 그건 충분히 해봤거든요.
어쩌다 보니 한 달 사이 두 권의 신간을 내놓게 되었지만,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게 애쓰면서 열심히 제 몫을 하고 싶어요. 함께해 준 분들에 대한 예의와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게 가장 크지만, 저도 이 순간을 겪어보고 싶었어요. 기회가 왔으니 휩쓸려야겠지요.
고독에 익숙해서 좋은 점은 인연이 귀하단 걸 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귀한 인연들을 바라보며 웃어보려고 해요. 지금은 그럴 시기인 듯해서요. 이 여정이 끝나면― 다시, 아니, 더 큰 고독이 시작될 거예요. 괜찮겠죠.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 테니까. 그때까지 꼼꼼히 여행해 보겠습니다. 그 여행지 안에는 선생님도 계시기를, 꿈처럼 희망해 봅니다.
웅변 학원 등록을
고민 중인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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