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중이었습니다. 뒤에서 소리가 다가왔습니다.
저 장미 봐봐.
돌아보니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오네요. 장미를 보라고, 앞선 사람이 말하자 뒤따라오던 사람이 대답합니다.
뭐라고?
저기 장미, 예쁘다고.
잘 안 들려.
이윽고 자전거에서 내린 두 사람이 걷습니다. 모르긴 해도 부부인 듯합니다. 앞선 사람이 낯선 저를 힐끔 보며 지나쳐 가는데, 뒤에 오던 사람이 멈춘 채 말합니다.
여기 봐봐. 장미가 참 예쁘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말을 하니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지나가고 저는 스마트폰을 꺼냈습니다. 장미 사진을 찍어 보는데 잘 찍히지 않더군요. 괜찮습니다. 저에게는 이야기가 남았고, 그것을 전한다는 핑계로 이렇게 안부를 물을 수 있으니까요. 잘 지내셨나요, 선생님. 오늘 편지는 사랑에 관한 장면으로 시작해 봅니다.
아시다시피 사랑은 아름답지만, 아름답기만 한 사랑은 없지요. 얼굴이 많습니다. 시처럼요. 그중에는 고독과 가까운 것도 있습니다. 무게가 다른 두 마음이 시소를 타는데, 그래서 불균형이 기본값인데 어떻게 사랑에 고독이 없을까요.
누구나 알지만 사랑 앞에서 사람은 무력합니다. 의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아요. 자기도 모르게 상대에게 온 마음을 다 써버리기도 하고요. 그런 뒤엔 고독감이 밀려옵니다. 여기 있던 무언가가 저기로 건너가서, 여기가 비어버려서 그럴 테지요.
마음의 공허를 채우려면 상대에게서 무언가 돌려받아야 하는데요. 어디 마음의 일이 공평하던가요. 오히려 준 만큼 돌려받으려다가 그만큼 더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서,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은 마음껏 서운해지고 맙니다.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의 고독감도 그와 비슷할 것입니다. 타인의 호응이 곧 글의 효용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반응이 없다면. 그러니까 읽었다는 신호나 답서가 없으면 난감해집니다. 무용한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들면서 필연적인 고독감이 몰려옵니다.
다만 그것이 쓸모없는 감정은 아니겠습니다. ‘답서 없음’이 새 글의 질료가 되기도 하니까요. 여기가 비니까, 비어버렸으니까 뭐라도 채워 넣으려고 애쓰게 되니까. 그 조바심이 책을 읽게 하고, 동네를 걷게 하고, 세상을 만든 슬픔을 그러모으게 만드니까요. 그러는 동안 ‘나’는 나만일 수 없게 되니 ‘나’의 글은 점점 더 세상과 가까워지겠지요.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글을 쓴 지은이는, 전부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믿는 저는 이제 답서가 없어도 낙담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라는 건 과거엔 그랬다는 소리이고요) 외롭고 고독할 때가 있지만 그 또한 제가 하는 일의 일부로 받아들인 지 제법 되었습니다. 로그인했는데도 자꾸 본인인증을 요구하는 앱을 쓰는 일처럼 불편해도 필요하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것에 기대지 않고 글로 저를 증명하기 위해 애써 봅니다. 언젠가 무엇도 바라지 않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면서요. 바람 없는 글이 어떤 글이냐면요. 가장 맑은 글. 누가 먹어도 탈 나지 않는 글. 당신의 숨, 그 일부가 되어 당신으로 사는 글.
그것이 제가 쓰고 싶은 형식의 글, 시의 본령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생각하면 조금 아득해집니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을 부리는 사람은 다 그런가요. 그러나 저는 시를 배우려 하기보다는 읽으려고 하고요. 읽기보다는 느끼려고 합니다. 아니, 그저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렵게 느껴질 땐 책의 도움을 받습니다. 시에 관해서는 유독 아름다운 책이 많아요. 신형철 선생님의 《인생의 역사》(난다, 2022)라든가 한정원 시인님의 《시와 산책》(시간의흐름, 2020)은, 아름답고 귀해서 생각날 때마다 다녀오는 세계이고요.
그보다 자주 시집 문을 엽니다. 어제는 오은 시인님의 시를 살아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요즘 어떤 시를 살고 계시나요? 그곳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시를 살아보려는 저는, 종종 집 없는 시를 짓기도 합니다. 부끄럽게도 독립출판물을 통해 몇 편의 시를 발표해 왔는데요. 저의 시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답서는 제가 참여한 독립출판시집을 만든 대표님께 전해 받곤 해요.
한 번은 지식인에 오른 질문을 보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제 시를 올려두고 지은이를 질문한 것인데요. 신기하게도 어떤 지식인이 답변을 달았더라고요. (지금 검색해 보니 그 시가 종이책으로 나온 적 있는지 묻는 분도 계시는데, 거기에도 지식인의 답변이 달려 있네요)
이처럼 지식인들만 아는 시인은, 얼마 전 새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쓴 시 중 두 편의 연작 시가 있는데요. 그것을 아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잠시 그 시들을 소개해 보자면요. 하나는 ‘우리는 돼’ 이고요. 다른 하나는 ‘우리는 안 돼’ 입니다. 제목은 비슷하나 내용은 반대입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로도 읽힐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로 보이고도 하는데, 어느 쪽이 과거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처음부터 연작을 계획한 건 아니에요. ‘우리는 안 돼’를 발표하고 나서 다음 시를 투고한 시기가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는데요. 매번 작별이나 눈물이 나오는 시만 발표해 왔으니 조금 다르게 써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전 시와 호응하게, 전복해서 호응하게 써보자. 그런 의도로 ‘우리는 돼’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서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데요. 어디선가 이 시들을 읽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소식에 저는 기쁘고 슬펐습니다.
오래전부터 혼자 해온 말이 있어요. 마음이 얇아질 때마다 시를 쓴다고요. 다만 너무 얇아지면 쓰지 못한다는 것을 올해 초에 배웠습니다. 커다란 상실을 경험하고서 시를 멀리하게 된 것입니다. 읽기는 하나 쓰지 못하고, 시의 재료는 본능처럼 모아두는데 차마 조립하지 못했습니다. 매번 참여해 온 독립출판시집에도 작품을 내지 못했고요.
시 쓰는 자아가 고장 났고, 고치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치고 싶지 않기도 해서 걷기만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시 같은 게 지나가면 모른 채 길을 걸었습니다. 한동안 그러다가 이제야 머리로만 짓던 시를 글자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다시 시를 쓰게 된 건 저조차 잊고 있던 저의 시를 나란히 이어주신 선생님 덕분입니다.
어느 한때, 선생님 안에 머문 시의 지은이가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이 한마디를 전하려고 참 멀리 돌아왔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쓰는 사람으로서 저는 요즘 칼럼이나 산문을 주로 쓰지만, 그저 하나의 존재로서 쓰는 글은 언제나 시가 유일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시를 쓴다는 것은 기어이 존재하겠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툴지만 계속, 존재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살아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겠습니다.
다시 서툴게
시를 짓는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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