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앞에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봅니다. 내일이 아니라 어제에 답이 있을 테니까요. 한참 톺아보다 한순간을 선택하려는데, 그러면 되는데 저는 자꾸 묻습니다. 정말 그 기억으로 괜찮겠어?
지난 편지에 질문지가 있었지요. 총 19,870,223건의 반가운 질문이 도착했는데요. (문과의 셈법으론 그렇습니다) 그중 저를 잠시 과거에서 살게 한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이었느냐면요.
지금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이 생에서 기억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가져가실 건가요?
(‘당신의 친구’ 선생님으로부터)
영화 《원더풀 라이프》(1999)에서 가져온 질문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직 다 보지 못한 영화입니다. 어제도 넷플릭스로 그 영화를 보다가 까무룩 잠들어버렸지 뭐예요. 다만 질문 안에 담긴 설정이 익숙하기는 해요. 읽은 적 있거든요. 꽤 많은 책에서 이 영화의 설정을 인용하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을 빌려 설정을 전해 볼게요.
사람이 죽고 난 후 잠시 머무는 생 너머의 공간, 림보. 림보에서 사람들은 살아생전 가장 행복했고 소중했던 순간을 선택한다. 그렇게 선택된 순간은 림보의 스태프들에 의해 영상으로 재현되고, 영상을 보고 난 후에야 그 기억을 안고 영원으로 떠날 수 있다.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이미화, 인디고, 2020)
이것이 오늘 편지의 주제입니다.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 선택하기. 같은 질문을 선생님께 드려 봐요. 어떠신가요? 단번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나요? 혹 그런데도 그 기억을 선택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셨나요?
저는 그랬어요. 중국집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만나는 발처럼, 반추를 시작하자마자 마중 나온 기억이 있었는데요. 그 기억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다른 기억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소중한 기억에도 슬픔이 묻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좋았는데, 넘치게 행복했는데. 이제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기억. 기어이 눈물 나는 기억. 그런 기억은 지우고 시작한 거예요.
매운 짬뽕집에 가면 매운맛 단계가 있잖아요. 저는 가장 매운맛은 선택하지 않아요. 그랬다가는 식사도 하지 못하고 속만 쓰릴 테니까요. 완뽕의 뿌듯함도 누릴 수 없고요. 같은 의미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건드렸다가는 편지를 쓸 수 없겠다 싶어서 벌집 같은 기억 대신 떠올려도 괴롭지 않은 기억을 추려보았어요.
슬프고 소중한 기억 몇 개를 지우고 나니 남은 것은 전부 사랑이더군요. 당연한 일이겠지요. 사람에게 가장 귀한 기억이, 사랑 말고, 무엇이겠어요. 아니, 사람이 아니라도 그럴지도요. 길 가는 고영이 씨를 붙잡고 물어도 이렇게 대답할걸요.
“야옹.”(번역: 이거 놔라)
말은 이렇게(?) 해도 동의할 거로 생각합니다. 사랑만큼 생명체를 진정으로 살게 하는 감정은 드물 테니까요. 해서 떠올려 봅니다. 가족, 애인, 친구. 그 밖의 소중한 사람들. 그들과 나눈 사랑의 장면을요.
참 어리다. 왜 여렸지. 운다. 웃는다. 안는다. 주고받는 눈빛들. 느끼해. 근데 따뜻해. 데이겠어, 왜 이래. 덕분에. 살았어. 감정의 낱말이 빗발치는 통에 저는 그만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괘념치 마세요. 버릇이니까요. 추억을 떠올리며 웃는 사람이 있어요. 그 웃음 참 예쁩니다. 행복했던 과거를 마주하는 일을 벌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지요. 그게 저예요.
저에게 기억을 기억하는 일은, 처음엔 웃음 나다가 마지막엔 서글퍼지는 일인 것 같아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요.
돌아갈 수 있는 기억이 어디 있나요. 시간은 거스를 수 없는데. 다만 재현할 수 없는 시절이 있다는 것. 그것을 실감할 때 슬퍼지는 것 같아요.
감당 못 할 슬픔만 있는 건 아닙니다. 슬픔에도 층위가 있잖아요. 이제는 슬프지만, 여전히 웃음 나는 기억이 있어요. 제게는 이런 기억들이 그래요.
친구와 둘이 소주를 마시던 밤.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던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만나러 가던 그 순간. 저 멀리, 나를 보러 찾아온 가족들이 보이는 순간, 수없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 뚜렷이 다가오는 시선에 손 흔들던 그 순간.
저는 이 중에서 선택해 보려고요. 하나 문제가 있어요. 셋 중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네요. 곤혹스럽습니다. 짜장면과 짬뽕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처럼요. (자꾸 중국 음식이 나오지만, 중국집 바이럴 아닙니다!) 림보에는 짬짜면 반입이 안 되겠지요?
아쉽기는 한데요. 그보다 아쉬운 게 있어요. 내가 가져갈 가장 소중한 한순간이 왜 지금은 아닌지. 왜 어제는 될 수 없는지. 나에게 지금은, 도대체 어떤 순간이기에.
같은 질문을 몇 년 전쯤 들었다면 답변이 더 쉬웠을 것 같아요. 바로 오늘, 이라고 말했을지도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곁에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던 때였으니까요. 가진 것의 크기나 이루지 못한 일들은 상관없었어요. 지금도 다르지 않을 터인데, 왜 같은 대답을 할 수 없을까요.
아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주부터 작은 병에 시달리고 있어요. 며칠 앓다가 지금은 회복기를 지나고 있네요. 어제 영화를 보다 잠든 것도 약 기운 때문이었고요.
지난 편지에서 선생님께 건강하셔야 한다고, 저는 염려 마시라고 했는데, 색깔 있는 글을 쓰고 싶던 저는 무색해지고 말았네요.
아프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어요. 가령 규칙적인 생활, 꾸준한 (걷기와 숨쉬기) 운동, 식사와 영양제 거르지 않기, 귀여운 것들 자주 보기, 충분한 수면. 이것들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지막 한 가지를 지키지 못해서 건강을 해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요. 요즘 통 잠을 못 잤거든요.
얼마 전 한 선생님께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잠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전해주신 마음이 너무 귀해서 아끼고 아꼈는데요. 아프고 나니 낭비하게 되더군요. 미뤄둔 숙제를 하듯이 오래 자고 있어요.
아침이든 새벽이든 눈을 뜰 때마다 편지를 써야지, 편지를 쓸 거야. 마음만 반복하다가 드디어 씁니다. 회복기에 들어섰기 때문이지요. 이런 순간마다 떠올리는 글이 있어요. 기사에도 인용한 적 있는. (제가 직접 썼다는 불편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계절처럼 반복해 겪는 문장입니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아플 때마다 그 순간 한 번씩 죽는 것이 아닐까 종종 상상해 본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로 건너가 현실의 나를 대신 끊임없이 죽는 상상. 그런 상상을 할 때면 우리의 생은 하나지만, 죽음은 여럿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회복하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음 죽음이 오기 전까지 이번 생은 더 잘해봐야지, 무서워하지 말아야지, 용기 내게 된다.”
이번에도 그럴 거예요. 몸이 회복되면 더 치열하게 살아보려고요. 갑자기 의욕이 샘솟네요. 내일을 기약하는 일이 어제를 돌아보는 일보다 더 좋은가 봐요. 아무래도 저는 내일만 보고 사나 봅니다. (원빈 아저씨에게는 알리지 말아 주세요)
어쩌면 저는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을 내일에 두고 사는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것처럼요. 그렇게 믿어 보려고요. 과거의 한순간을 선택하는 힘듦 대신 매일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게요.
이미화 작가님 덕분에 글로 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고 해요. “내가, 누군가 선택한 순간의 일부였다는 걸 알았어.” 가만히 상상해 봅니다. 혹 누군가 선택한 순간에 나도 있지 않을까, 하고요. 참 염치도 없다 싶어서 푸푸 웃습니다.
웃고 나니 세상이 조금 달리 보여요.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이, 타인과 함께할 날들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모르잖아요. 이 순간이, 우리가 가져갈 최고의 기억이 될지 누가 알겠어요?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 이제야 저는 간신히 알아갑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우리의 이 순간이 마지막에 가져갈 기억은 못 되더라도, 나중에 떠올릴 때 피하고 싶은 슬픔도, 잊고 싶은 기억도 아니었으면 해요. 그러려면 먼저, 기억에 남아야 하겠고요.
부디 기억해 주세요. 어느 한 시절 편지로 나눈 우리의 말들을. 그 순간의 마음을.
귀한 기억이 되려면 필요한 게 하나 더 있지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사실 저는 하고 있어요. 고독에게 말을 걸며 쓰는 이 편지가 선생님을 사랑하는 저의 형식입니다. 모르셨다면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잘할게요. 다시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는 못 해도 사랑하며 살아가려고요. 곳곳엔 하필, 우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생의 목표는 사랑
응애 응애 다짐하는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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