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길이는 조금 신기합니다. 어느 날은 너무 짧고 어떤 날은 너무 깁니다. 실제로 시간이 다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루가 짧게 느껴지는 날에는 서둘러 잠을 청합니다. 짧다는 건 빼곡한 일정을 보냈다는 의미이고 그런 날엔 몸과 마음이 피로하기 마련이니까요.
너무 긴 하루를 보내는 날에는 당황합니다. 혼자서는 다 쓰지 못할 긴 하루를 나눠 쓸 누군가를 궁리합니다. 가까운 이가 떠오르나 연락은 망설입니다. 상대가 보낸 하루의 길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이도 긴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우리는 실없는 소리라도 주고받으며 지난한 시간을 줄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이의 하루가 너무 짧아서 서둘러 닫고 싶은 밤이라면 나의 연락이 반갑지 않을 테고요.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고독해지곤 합니다. 그럴 때면 편지를 생각합니다. 편지는 지금 쓰더라도 나중에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받더라도 나중에 읽을 수 있고요. 어느 하루를 담은 글을 스스로 선택한 순간에 주거나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편지의 이로움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오늘 하루 어땠나요? 짧았나요, 길었나요? 알 수 없으므로 편지를 보냅니다. 유난히 긴 하루에 열어 보시길. 그 순간 우리가 가만히 이어지길 바라며. ‘고독에게’ 보내는 아홉 번째 편지. 지금 시작합니다.
여름 안에서 잘 지내고 계시는가요, 선생님?
여전히 덥지만, 아침과 밤 그리고 새벽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네요. 마음 같아서는 이 새벽의 바람을 편지에 넣어두었다가 덥고 더운 오후의 선생님께 보내드리고 싶어요. 그럴 수 없으니 바람(wind) 대신 바람(wish)을 적어 보냅니다. 부디 시원하시길!
이렇게 말씀드려도 당장 시원해지지는 않겠습니다. 여전히 여름다운 여름이지요.
선생님께서는 여름과 잘 맞으시나요? 저는 비가 많이 오면 근육통에 시달리고,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고, 무기력한 기분을 좀처럼 견디지 못해서 여름과 친하지 않습니다. 올여름은 유독 그랬고요. 너무 더워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길게 느껴지는 거 있지요.
절정은 칠월 말부터였던 것 같아요. 보름 남짓. 너무 더웠잖아요.
방 안에서 편하게 일하는 처지이지만, 매일 숨 막힐 듯 뜨거운 날들이 이어지는 통에 작업도 쉽지 않더군요. 에어컨 바람 없이 자연의 기온 그대로 겪으며 지냈더니 낮에는 책상 앞에 앉기도 어려웠습니다. 해가 지고서야 작업한 날이 많아요.
마감은 지켰지만, 평소처럼 더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무엇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여름마다 찾아오는 무기력 때문이었지요. 좋아하던 일도 시들해지는 시기거든요.
올여름엔 정도가 조금 심했습니다. 독서조차 드문드문할 만큼. 활자를 읽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몸이나 마음이 괴로울 때 작품을 읽고 나면 책이 아니라 괴로움만 기억에 남더라고요. 어떤 책은 복기할 때마다 내용이 아니라 한 시절의 고통만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것이 꼭 해로운 일만은 아니라고 믿지만, 이번엔 기껍지 않아서 책을 자주 덮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프로 스포츠도 좋아해요. 주로 축구나 NBA를 봐요. 가끔 배구도 보고요. 관련 기사도 자주 읽는 편인데요. 이번엔 기사는커녕 경기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또 극장에 간 날은 있지만 OTT도 자주 접속하지 않아서 본 영화가 별로 없네요. 주말엔 여행을 가자는 지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평소라면 갔을 텐데. 마음이 영 동하지 않더라고요. 약속도 미루거나 취소한 날이 많습니다. 그러고도 일은 조금밖에 하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휴가를 보낸 셈이에요.
이 시기를 이렇게 보낼 줄 알았다면 아마도 계획을 세웠을 거예요. 즐겁거나 충전이 될 만한 일을 했겠지요. 약속도 자주 잡고, 보고 싶은 것을 보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요. 하지만 쉴 생각이 없었으므로 계획도 없던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보내고 나서야 아쉬워하고 있어요. 휴가라면 모름지기 휴식이나 놀이를 해야 했는데. 휴식은 충전, 놀이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이잖아요. 어중간하게 보내는 바람에 충전도 즐거움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행했는지 물으신다면. 아니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다가오는 시간 앞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마냥 견뎌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어요. 일테면 처음 듣는 노래의 첫 소절을 듣거나 정보 없이 만난 책의 첫 문장을 읽고서 나는 이 작품을 겪는 동안 슬프겠구나, 무력하게 슬퍼지겠구나, 예감할 때처럼. 그저 그 시간이 가진 성격 그대로 살아가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을 칠월 중순에도 느꼈습니다. 한동안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본능에 따른 것인데요. 아마도 제게는 그러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다시 돌아가도 계획은 세우지 않을 거예요)
주로 누워있었습니다. 다들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누워있다니. 부끄러운 일이지마는 전처럼 마음이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지쳐 있었나 봐요. 의미를 좇으며 사는 일에. 그래서 스스로 허락해 준 것 같기도 해요. 저 자신에게 이렇게나 너그러울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에요!
무의미한 여름나기 동안 노래를 많이 들었습니다. 평소엔 자주 하지 못한 일이에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읽기든 쓰기든 몰입이 안 될 때가 많고, 출퇴근도 없으니 이제는 작정하지 않으면 안 듣게 되더라고요. 그랬는데 오랜만에 아낌없이 노래를 들었어요.
얼마 전 한 선생님께서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이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는데요. 그러고도 빠뜨린 노래가 많더군요. 한 곡 한 곡 떠올리다가 참 잡다하게 좋아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습니다. (노래 취향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다음으로 미루고요) 지금 다시 무슨 노래를 듣는지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뉴진스의 ETA요.”
덥고 지난한 여름을 보내며 뉴진스의 모든 노래를 듣고, 듣고, 또 들었습니다. 지금도 듣고 있고요. 무대도 찾아봐요. 부정기 없이 팬이 된 모양입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푹 빠져 지낼 듯해요. (발견은 느린데 충성도가 꽤 높은 편입니다)
잠시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한 아티스트에게 눈을 뜨고 귀가 열린 것을 보면 꼭 의미 없는 시간만 있던 건 아닌 듯합니다. 아마도 올여름은 뉴진스를 만난 계절로 기억할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이 시절이 제법 소중해지네요.
입추가 지났고, 다음 주엔 처서가 있습니다. 핑계가 될 수 없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어요. 이쯤이면 다시 일어나 열심히 달릴 줄 알았고요. 하나 제 생활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의욕이 샘솟지 않아서요.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쓴 적 있는데요. 별다른 사건 없이도 우리의 의욕은 또다시 지겹게 차오를 테니까요. 늘 그래왔듯이.
곧 저의 하루는 해의 시간과 함께 짧아질 것입니다. 밀린 숙제를 하느라 바빠지겠지요. 어서 일어나야겠습니다. 아.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 더워요. 무의미한 시간도 더 필요하고요. 뉴진스 뮤직비디오도 더 봐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쉽니다. 쉬어도 됩니다. 선생님께도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답니다. 무리하지 말고, 무사하게. 우리 그렇게 건강하게 또 만나요!
팬클럽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버니즈가 된 이 새벽,
이학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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